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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

MBC <기황후>, 30부까지 사실이 없다 , 한·몽 관계를 왜곡하다 ⑩ 문화방송(MBC) 드라마 는 기황후의 실제 삶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드라마 에서의 기황후는 실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기황후의 이름이 '기승냥'이니 '기양의'이니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기황후가 무사(武士)나 자객(刺客)도 아니었고 왕유라는 인물도 허구의 인물이다. 기황후는 자진하여 후궁(後宮) 시험에 지원한 사실도 없으며, 혜종과의 사랑 싸움도 한 적이 없다. 적어도 드라마 30부까지 묘사된 기황후에서, 기황후와 관련된 부분에는 사실이 하나도 없다. 그러면 기황후라는 인물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기황후, 역사상 대표적인 신데렐라 기황후(奇皇后)는 원나라 혜종(惠宗)의 황후로 몽골 이름은 얼제이투-코톡토(完者忽都, Öljeitü-Khutugtu)이다. 그동안 기황.. 더보기
<기황후>, 원 혜종이 '까막눈'이라고? 황제가 '까막눈'이라니? 드라마에서는 이미 성인이 된 혜종(타환 : 순제)이 '까막눈(일자 무식꾼)'으로 나온다. 그래서 기양의(기황후 : 당시는 기재인)가 "연철(엘테무르)에 대항할 힘을 길러야 한다."고 하면서 혜종에게 글자 하나하나를 가르치는 장면이 여러 차례에 나온다. 드라마 에서 혜종이 글을 모르는 이유는 연철 승상 때문이라고 한다. 즉 황제가 글을 알면, 총명해져 자기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아예 글을 멀리하게끔 했다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이 대목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이것은 도대체 정사의 어떤 기록을 토대로 작성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혜종의 아버지인 명종(明宗 : 쿠살라)이 사망했을 때 혜종은 10세의 어린이였는데, 이때까지 강력한 잠룡(潛龍)인 황자의 .. 더보기
아리랑의 고향, 알타이와 몽골 초원 , 한·몽 관계를 왜곡하다 ⑧ 드라마 25부에서는 기양의(후일 기황후)가 황제(순제 : 혜종)에게 "저의 복수가 바로 폐하의 복수"라고 하면서 엘테무르(연철)의 제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리고 후궁(後宮) 간택의 과정에서 "백성들은 황제 폐하의 올바른 정치와 따뜻한 관심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폐하, 모든 음식에 필요한 소금처럼 부디 백성들의 마음에 녹아드는 황은(皇恩)을 베푸소서."라고 아뢴다. 어쩌면 원나라와 고려의 관계로 보면, 기황후와 순제의 관계가 사실에 가깝다. 한국과 몽골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많은 문화적·심리적 공통성뿐만 아니라 매우 독특한 관습들도 공유한다. 예컨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한 살을 먹는다든가(중국과는 분명히 다르다), 식당이나 가게 등에 가면 한국에서는 '이모', '아제'라.. 더보기
한국과 몽골, 그 천년의 비밀을 찾아서 , 한·몽 관계를 왜곡하다 ⑦ 드라마 는 보편적인 한국인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보여준다. 드라마에서는 몽골은 오랑캐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예 상인의 입을 빌려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것, 그래서 버림받는다는 것,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罪)이지"라고 한다(23부). 고려 폐주 왕유는 "칼을 들고 싸운 것은 원나라 때문이고 … 적을 품에 안아 심장을 노릴 수 있다."고 비분강개하고 있다(24부). 전체적으로 원나라에 대한 분노가 과잉상태이다. 이것은 이 작가나 PD가 잘못된 역사교육을 너무 오랫동안 받아온 탓이다. 원나라는 일본과 베트남 정벌에 실패하였다. 베트남의 열대 밀림은 일본의 가미가제(神風)과 함께 원나라 군대로부터 자국을 보호한 일종의 수호신이었다. 이들을 제외하고는 몽골군이 들어갈 수 있는 .. 더보기
<기황후>유감…원나라, 고려의 허언을 인내하다 , 한·몽 관계를 왜곡하다 ⑥ 이제 궁궐을 짓고 있으니 육지로 나갑니다 1249년 11월 최이(崔怡 : 최우)가 죽고 아들인 최항(崔沆)이 정권을 계승했다. 원나라 조정은 고려에 국왕 친조를 요청했으며, 60명의 사신단을 고려에 보내(1250년 6월) 국왕이 육지를 나올 것을 종용했지만, 고려 조정은 이들을 강화도의 수창궁(壽昌宮)에서 크게 환대하여 무마시키는 한편, 48명의 사신단을 보내어 원나라를 무마하였다.(원[元]이라는 국호는 쿠빌라이칸 때부터 사용되었지만 이후 서술상의 편의를 위해 몽골 제국 = 원나라로 사용하기로 한다) ▲무신정권 계보도 자료. (금성 역사부도 재구성) 당시 최 씨 무신정권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도 없이 사신들을 계속 보내고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면서 원나라를 무마시키기에만 주력하.. 더보기
<기황후>가 왜곡한 '30년 대몽항쟁'의 진실 , 한·몽 관계를 왜곡하다 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국가 기강이 무너지고 국토가 초토화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죽고 황룡사 9층 탑을 비롯한 각종 문화재들은 소실되었다고 알고 있다. 드라마 의 경우에도 기황후의 어머니는 몽골병의 화살을 맞아 죽었고 아버지는 간교한 원나라 왕자의 술책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상사병에 걸린 황제(순제)에게 기양의(기황후)는 "저는 한 번도 당신에게 마음을 연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비단 드라마 뿐만이 아니라 원나라 시대를 다루는 한국의 소설이나 드라마의 대부분은 많은 고려인이 죽고 전국이 초토화되는 것들을 보여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2005년 판 는 "고려 조정에서는 몽고와 강화를 맺으려는 주화파가 득세하여 최 씨 정권.. 더보기
<기황후>의 왕유, 충선왕과 충혜왕의 합성 캐릭터? , 한·몽 관계를 왜곡하다 ④ 드라마 17부에서 20부까지는 주로 왕유(고려 폐주)가 현실 정치에 직접 개입하여 권신인 엘테무르(연철) 대승상을 공격하는 부분으로 원 순제(혜종 : 후에 기황후의 남편)의 황권을 되찾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왕유는 엘테무르(연철) 대승상을 제거하기 위해 괴문서를 작성하여 붙이기도 하고, 황태후와 공모(共謀)하여 잔존 세력들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 장면들은 시청자들을 의아스럽게 한다. 그 이전에 왕유가 당했던 대우나 서러움과 고통 등을 본 시청자들은 이 고려 폐주(왕유)가 원나라의 현실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순제 당시에 고려왕이 돌궐을 무찌른 적도 없고 고려왕이 이에 대해 공을 세운 적도 없다... 더보기
<기황후>가 왜곡한 고려와 원나라의 결혼동맹 , 한·몽 관계를 왜곡하다 ③ 드라마 17부에는 원나라의 황태후(皇太后)가 왕유(前고려왕)에게 원나라 공주와의 혼인을 권유하는데, 왕유가 이를 사양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자 황태후는 "혼사(婚事)를 불편해하니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원나라 황실에서 폐주에게 황녀와의 결혼을 추진하는 의아한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오랜 세월을 이상하게 고려와 원나라의 결혼동맹에 대해 폄하(貶下)하는 것이 무슨 지성(知性)의 조건처럼 생각되어 왔다. 또 마치 원나라가 고려왕에게 강압적으로 결혼을 강요하였고(한국의 대부분의 관련 자료들의 논조가 이렇다.), 그 결혼동맹이 원나라의 식민지가 되는 지름길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잘못된 역사교육의 탓이다. 결혼을 애걸한 것은 애초에 고려 왕실이었기 때문이다. .. 더보기
<기황후>, 몽골군이 고려인을 총알받이로 동원했다고? , 한·몽 관계를 왜곡하다 ② 문화방송(MBC) 월화드라마 방송 전부터 역사 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타 배우들의 호연으로 월화극 정상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는 월화극 독주체제를 이어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원작인 가 e-book 베스트셀러 순위 8위와 9위에 올랐다고 한다. 기황후의 파란만장한 삶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지지를 얻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한 것이라는 데, 드라마의 극본을 맡은 작가 2인이 직접 집필함으로써 드라마 의 전개와 비교하며 보는 재미를 선사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인기를 떠나서 냉정히 바라보면 이 드라마는 상당히 심각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 역사를 작가의 상상에 맡기다 첫째, 기황후 관련 사료가 부족한데도 전문가들의 조언을 제대로 받지 .. 더보기
MBC <기황후>, 제작 전에 역사 공부 좀 하지… , 한·몽 관계를 왜곡하다 ① 문화방송(MBC)이 50부작으로 기획한 드라마 가 큰 화제를 몰면서, 월화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이 드라마는 제작 발표회 단계에서부터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담당 PD가 "기황후에 대한 기록 자체가 상당히 단출하고, 원나라의 역사 자체가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 기황후 내용은 전적으로 작가의 창작에 의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하려고 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드라마라고 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역사드라마를 단순히 드라마로 생각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제작진이 봤더라면… 그 동안 '기황후'의 역사왜곡에 대한 부분은 주로 기황후, 기황후의 족벌 세력, 충혜왕 등 에 국한되어있다. 즉 국내에서는 기황후를 필두로 기 씨 일족이 조국인 고려에 온갖 악행을 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