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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學室

자동차 후진 사고에 대해서.... 자동차 후진 사고에 관한 생각.. 올해 3월에 집사람이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접촉사고가 났다고 연락이 온적이 있습니다. 부리나케 택시타고 사고 현장을 갔는데 뭐 그리 크게 사고난 거는 아니더군요. 사고 경위를 물어보니 신호대기중에 뒤에 어이없게 차가 와서 그냥 박았답니다. 아무 조취를 취하지도 않고 차에서도 내리지 않아서 집사람이 그 분에게로 가서 이야기를 하니 왠 아줌마가 운전대잡고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더랍니다. 집사람이 그런 모습에는 경상도 사람 특유의 성격이 나옵니다. 사고를 냈으면 내려서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경찰을 부르던가 보험회사를 부르던가 해야하는거 아니냐고 따졌답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후진한거 아니냐고 반문을 하더랍니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고 해서 블랙박스가 있으.. 더보기
‘이명박 콤플렉스스러운…’ ‘이명박 콤플렉스스러운…’ 흔히 빛은 숭배하지만 어두운 그림자는 나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음지에 감춰진 콤플렉스가 우리네 삶엔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의 경우도 그렇다. 그가 30대에 대기업 사장이 된 데 이어, 서울시장과 대통령에까지 오른 것도 바로 콤플렉스의 힘이다. 지독한 가난에 하루 두 끼를 술지게미로 때우면서도 주경야독으로 성공신화를 일궈냈다. 말 그대로 자수성가의 전형이며 샐러리맨의 신화 그 자체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은 바로 지독한 ‘가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콤플렉스와 동일한 에너지다. 지독하게 열심히 살고 아끼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이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고, 태국 건설현장 폭동 때는 회사 금고부터 끌어안고 죽기 살기로 버텼다. 그에게 지독한 가난이.. 더보기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9.11에 돌아본 테러와 의혈 독립 투쟁 9.11 테러의 연출자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5월 2일 자신을 집요하게 쫓던 미군의 총탄에 맞아 저승으로 갔다. 그는 악마인 미 제국주의와 성전(聖戰)을 벌인 끝에 장렬히 산화했으니 천사의 인도를 받아 천국으로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험상궂은 인상의 저승사자는 천만뜻밖에도 지옥행을 명령했다. 빈 라덴은 당황했다. 그는 저승사자의 소맷부리를 부여잡고 물었다. "잠깐만! 혹시 천국에 김구라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저승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빈 라덴은 그분을 한 번만 뵙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저승사자는 조심스럽게 천국에 연락을 넣었고, 김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빈 라덴 앞에 나타났다. "당신이.. 더보기
정도전의 목은 쳤지만, 이방원도 유학자였다 정도전의 목은 쳤지만, 이방원도 유학자였다 태종의 건강학 ② 태종은 드라마 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최근에는 또 다른 드라마 에서 정도전의 맞상대로 맹활약 중이다. 에서 태종 역할을 맡았던 배우 유동근 씨가 에서는 태조 이성계 역할을, 그리고 당시 세종 이도 역할을 맡았던 안재모 씨가 이번에는 태종 이방원을 맡았다. 드라마의 제작진은 권력 쟁취 과정에서 골육 간에 벌였던 피눈물을 '용의 눈물'로 정의했다. 하지만 태종이 진짜 '용의 눈물'을 보였던 때는 바로 자신의 막내아들 성녕대군이 죽었을 때였다. 태종 12년 6월 23일 중궁인 원경왕후 민 씨는 막둥이 아들을 낳았다. 태종은 막내의 출산 후 내의원에 근무한 어의들에게 각각 상을 후하게 내리는 것은 물론 자신의 기쁨도 숨김없이 표현했다. "내가 심히 .. 더보기
정도전 죽인 이방원, 진심은 이랬다 정도전 죽인 이방원, 진심은 이랬다 태종의 건강학 ① 조선 건국을 위해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고, 건국 이후에도 왕권 중심의 권력 재편을 위해 피의 숙청을 단행했던 태종은 어떤 체질이었을까? 우리는 태종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기골이 장대한 후덕한 인상을 떠올린다. 아마도 드라마 에서 태종 역할을 한 탤런트 유동근이나, 최근 에 나온 안재모의 이미지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의사를 조롱한 똑똑한 왕 하지만 사실 태종은 기골이 장대한 건강 체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록을 하나 살펴보자. 태조 3년 6월 1일, 앞으로 태종이 될 정안군 이방원은 명나라 황제의 조선에 대한 의구심을 풀고자 사신으로 떠난다. 태조는 먼 길을 떠나는 아들을 놓고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너의 체질이 파리하고 허약해서 만리 여.. 더보기
‘댓글 충동’ 내 마음부터 살펴보자 ‘댓글 충동’ 내 마음부터 살펴보자 댓글을 달고 싶은 충동이 이는 순간. 바로 자신을 돌아볼 절호의 기회다. 인터넷이든 신문기사든 내 콤플렉스가 건드려져 외부로 투사된 결과물이 바로 ‘댓글’이기 때문이다. 댓글은 때론 합리적 주장과 사회참여로 포장된다. 하지만 그 이면의 동력은 콤플렉스다. 평소 무의식 지하창고에서 꿈틀거리다 취중진담처럼 올라온다. 과연 우리를 열폭하게 만드는 실체가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일까. 아니면, 내 안에 이미 존재하던 폭발 직전의 콤플렉스가 그들을 건수로 잡은 것일까. 왜 특정 내용을 접하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댓글을 달고 싶을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댓글도 오만가지 세상사 중에서 정확히 내 콤플렉스와 마주칠 때의 결과물이다. 댓글은 외부로 ‘투사’하고픈 충동과 상통한다... 더보기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간도와 한국사 9월 3일은 중국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일(1952년)이고, 9월 4일은 간도협약 체결일(1909년)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모두 중국에서 일어났지만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연변(옌볜)을 포함하는 간도가 역사적으로 중국과 한국 사이에 영유권 분쟁을 겪어 왔고, 지금도 그곳에 많은 한인(조선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간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을 고구려와 발해가 통치한 적도 있다. 그래서 지금도 고구려의 수도가 있었던 지안시 등 압록강 북안의 서간도 지역과 두만강 북안의 북간도 지역에서는 한국인 방문객과 현지 중국인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흐르곤 한다. 이 지역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 사이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 더보기
서울 거지들이 갑자기 사라진 엽기적인 사연은? 서울 거지들이 갑자기 사라진 엽기적인 사연은? 명종의 건강학 ③ 심약한 왕에 나라는 엉망이 되고… 한의학에선 목소리와 정력이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판단한다. 명종 3년 11월 7일 시강관 정유길이 왕의 목소리를 거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옥음을 들으니 여느 때만 못합니다." 신하들의 불안한 예측은 후일 맞아 떨어진다. 명종은 순회세자 하나를 낳았는데, 그 세자가 13세에 죽자 건강에 결정적 타격을 입는다. 명종 18년 9월 20일 순회세자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명종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진다. 이듬해 윤2월 24일 명종은 세자를 잃은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피력한다. "나의 심기가 매우 편안하지 않으며 비위가 화하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며 갑갑하다. 한기와 열이 쉽게 일어나며 원기(元氣)가 허약하여 간간.. 더보기
인종 떡 독살설의 진실은… 인종 떡 독살설의 진실은… 명종의 건강학 ② 인종이 마지막으로 언급한 인물은… 인종의 재위 기간은 8개월이다. 인종 1년 윤(閏)1월 1일부터 약방 제조와 의원들은 계속해 진찰을 받고 약을 쓸 것을 왕에게 건의하지만 거절당한다. 신하들은 세종의 경우처럼 고기반찬을 먹을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인종은 1월 29일 이런 신하들의 요청에 이렇게 반문했다. 실록이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기록할 만하다. "나도 아들인데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어디에다 나의 마음을 나타낼 수 있느냐." 인종 1년 6월 25일 이질(설사) 증세가 시작되면서 왕의 증세가 급격하게 나빠진다. "상의 증세는 대개 더위에 상한 데다 정신을 써서 심열(心熱)하는 증세로 매우 지치셨는데, 약을 물리치는 것이 너무 심하여 광증을 일으키실 .. 더보기
조선에도 여왕이 있었다 조선에도 여왕이 있었다 명종의 건강학 ① 문정왕후 윤 씨는 조선 제12대 왕 인종(1515~1545년, 재위 1544~1545년)과 제13대 왕 명종(1534~1567년, 재위 1545∼1567년)의 어머니로, 중종의 계비다. 연산군을 내쫓은 반정 공신은 중종과 그의 첫 부인인 단경왕후 신 씨를 강제로 헤어지게 만든다. 신 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과 처남, 매부 지간으로 반정에 반대했기 때문에 겪은 불행이다. 인왕산의 치마바위는 쫓겨난 신 씨가 구중궁궐에서 중종이 혹시 자신을 바라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바위에 치마를 걸치고 궁궐을 바라봤다는 애달픈 한이 서린 장소다. 중종의 둘째 부인은 장경왕후인데, 출산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출산한 아이가 인종이다. 장경왕후의 출산을 도운 이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