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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72]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25


서기전2267년 이후 늦어도 서기전2247년 사이에 사공(司空) 우(禹)는, 직속신하인 백익(伯益)과 함께 동서남북의 명산대택(名山大澤)을 답사하면서, 지방유력자(地方有力者)를 찾아다니며, 산천의 맥리(脈理)와 지하자산(地下資産)과 새와 짐승과 곤충류와 민속(民俗)과 특이한 나라, 지역, 토지의 거리를 조사하여 인문지리책을 지었으니, 이를 산해경(山海經)이라 한다.
 

[사공(司空) 우(禹)가 백익(伯益)과 함께 우공(虞貢)의 사례(事例)로 산해경(山海經)을 짓다]
 

우(禹)가 편찬한 원래의 산해경은 서기전2267년경부터 서기전2247년경 사이에 지어진 것이 되고, 이는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 때 태자부루로부터 치수법(治水法)을 전수받으면서 치수와 관련하여 명을 받은 우공(虞貢)의 사례(事例)에 속하는 것이 된다.

오월춘추(吳越春秋) 월왕(越王) 무여(無余) 외전(外傳) 제육(第六)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우(禹)가 이에 동쪽으로 순행하여 형악(衡嶽)에 올라 백마(白馬)의 피로 제사를 지냈다......꿈에서 붉게 수놓은 옷을 입은 남자를 보았는데 자칭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라 하였다......우(禹)는 물러나와 삼개월동안 목욕재계하였다. 경자일(庚子日)에 완위산(宛委山)에 올라 금간(金簡)의 책을 발견하매 금간(金簡)과 옥자(玉字)로 되어 있었으니 통수(通水)의 이치를 얻은 것이었다. 드디어 사독(四瀆)을 순행하였다. 익(益)과 함께...명산대택에 이르러 그 신(神)을 불러 산천(山川)의 맥리(脈理)와 금(金)과 옥(玉)의 소유와 조수곤충(鳥獸昆蟲)의 종류와 팔방의 민속(民俗)과 특이한 나라와 지역과 토지의 거리수에 이르기까지 물어 익(益)으로 하여금 소상히 기록하게 하였다. 고로 그것을 이름하여 산해경(山海經)이라(吳越春秋越王無余外傳第六...禹乃東巡 登衡嶽 血白馬以祭...因夢見赤繡衣男子 自稱玄夷蒼水使者 ...禹退又齊三月 庚子登宛委山 發金簡之書 案金簡玉字 得通水之理...遂巡行四瀆 與益...行到名山大澤 召其神而問之山川脈理 金玉所有 鳥獸昆蟲之類 及八方之民俗 殊國異域 土地里數 使益疏而記之 故名之曰 山海經).

여기서 형악(衡嶽)은 대홍수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양자강 남쪽에 있는 형산(衡山)을 가리키며, 붉게 수놓은 옷을 입은 남자는 보통사람이 아니라 신분이 높은 귀인(貴人)이라는 말로서 결국 현이(玄夷) 창수사자로서 단군조선의 진한(眞韓) 태자부루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이 형산의 구루봉 정상에 우(禹)가 세운 치수기념비가 우(禹) 자신에게 치수법을 전수하여 주신 천사(天使)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공덕비이며, 이를 중국측에서는 소위 우왕비(禹王碑)라 부르는 것이다.

창수사자(蒼水使者)는 검푸른 물 또는 검푸른 바다의 사자(使者) 즉 현이(玄夷)에 있는 검푸른 물 지역 출신의 사자(使者)를 의미하는데, 이는 곧 북극수정자(北極水精子)와 통하는 말이다. 오방색(五方色)으로 보면 검은색은 북쪽이고 푸른색은 동쪽인데 검푸른색은 동북(東北)에 해당하기도 한다. 현이(玄夷)의 현(玄)이라는 글자는 누르끼리한 검은색으로서 오방으로 보면 북극과 중앙의 사이에 해당하는 것이 되어 현이는 결국 북이(北夷)를 나타낸 것이 된다.

현이의 창수사자는, 천자국인 우(虞)나라의 북쪽이자 동북에 위치한 단군조선 본국 즉 중앙조정의 사자로서 천사(天使)가 되며, 북극수정자는 북극수의 정자(精子) 즉 천제(天帝)의 아들(子)임을 의미한다. 우(禹)에게 치수법을 전수한 분은 곧 단군왕검의 태자인 부루(扶婁)이며, 단군왕검은 천제(天帝)로 받들어지므로 태자는 천제자(天帝子)로서 북극수정자(北極水精子)인 바, 태자부루가 단군왕검이 파견한 사자로서 창수사자(蒼水使者)로 기록된 것이다.

위 오월춘추의 기록에서, 사공(司空) 우(禹)는 형산(衡山)에 올라 백마제(白馬祭)를 지내고, 현이의 창수사자인 단군조선의 사자 태자부루를 만나는 현몽(現夢)을 하였으며, 이후 3개월 동안 목욕재계(沐浴齋戒)하면서 태자부루를 뵙기를 기다린 것이고, 서기전2267년 갑술년(甲戌年)의 어느달 경자일(庚子日)에 태자부루께서 주관한 도산회의(塗山會議)에 신하(臣下)이자 제자(弟子)로 참석하여 천사(天使) 태자부루로부터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전수받았던 것임이 드러난다.

우(禹)가 태자부루로부터 전수받은 오행치수법이 담긴 금간(金簡)의 책이 소위 금간옥첩(金簡玉牒)이며, 금판(金版)으로 된 서첩(書帖)으로서 옥(玉)으로 글을 박은 것이 된다. 금간옥첩에 새겨진 옥자(玉字)의 자형(字形)은 당시 단군조선에서 쓰던 신전(神篆)으로서 배달나라 때부터 사용하여 오던 상형문자(象形文字)가 틀림없을 것이다.

위 오월춘추에서 산해경은 우(禹)가 치수법을 얻은 후 백익(伯益)과 함께 명산대택(名山大澤)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인문지리서(人文地理書)임이 밝혀진다. 당시 우순(虞舜)의 나라는 단군조선 구족(九族)의 나라 중 일개 제후국(諸侯國)인 천자국(天子國)에 불과하며, 그 둘레는 곧 단군조선 구족이 자치를 행하던 단군조선의 영역이고, 우(禹)가 천사(天使) 태자부루로부터 천부왕권(天符王權) 즉 치산치수(治山治水)에 관한 전권(專權)을 전수(傳授)받아 인력과 물자를 동원하여 치수에 성공한 것이 된다.

서기전2267년부터 우(禹)는 본격적으로 치수에 돌입하여 얼마되지 아니하여 마무리 하게 되었던 것이 된다. 이때 만들어진 책이 바로 산해경인 것이다. 이는 도산회의(塗山會議)에서 하교(下敎)된 우공(虞貢)의 사례(事例)에 속하는 것이다. 즉 5년에 한번씩 우공의 사례를 보고토록 한 내용에 산천지리와 인문지리에 관한 것도 함께 보고토록 하였으니 이에 만들어진 책이 바로 산해경이다. 즉 산해경은 서기전2267년경이후 서기전2247년경 사이에 만들어진 책으로서, 진한 태자부루가 순행한 해가 되는 5년후의 서기전2262년경에 일차적으로 완성된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