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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5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1


진한 태자부루는 낭야성(琅耶城)에 반달간 머무는 사이에 번한(番韓) 낭야(琅耶)에게 명하여 경당(扃堂)을 크게 일으키게 하고, 산동(山東)이라 불리는 지역의 기준이 되는 태산(泰山)에서 삼신천제(三神天祭)를 올리도록 하였으며, 이에 번한 낭야는 태자부루의 명을 받들어 사람을 시켜 태산에서 천제(天祭)를 올리게 하니, 이때부터 회대(淮岱地域) 즉 산동지역과 회수(淮水)에 걸치는 지역에서 제천행사가 유행하게 되었다.

[진한(眞韓) 태자부루, 산동지역에서 경당(扃堂)을 일으키고 태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내게 하시다]


경당(扃堂)은 미혼의 자제(子弟)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자 심신수련기관이다. 경당은 소도(蘇塗) 옆에 설치하여 육예(六藝)를 닦던 곳으로서, 독서(讀書), 습사(習射), 치마(馳馬), 예절(禮節), 가악(歌樂), 권박일술(拳搏釰術)을 닦게 하였다. 즉 학문을 닦고, 활을 쏘고, 말을 타고, 예절을 익히고, 노래를 배우고, 격투기와 일술(釰術)을 익혔던 것이다. 특히 일술(釰術)은 실제 검을 쓰는 검술이 아니라 수련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무딘 칼을 사용하는 검술(劍術)이다.

단군조선의 경당제도가 후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고구려 때에도 경당(扃堂)이 있어 미혼의 자제들이 심신수련을 하였는 바, 곧 선인도랑(仙人徒郞)이 그들이며, 신라에도 있었으니 곧 화랑도(花郞徒)이다. 신라의 화랑제도가 산동지역에 있었던 주(周)나라의 제후국이던 노(魯)나라 등지의 제도에서 연유하였다 하는 등의 기록은 모두 그 근거가 있는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 초기에 행해졌던 경당제도가 주나라 춘추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의 무대이던 산동지역에서 제천행사(祭天行事)와 함께 대대로 이어져 시행되었던 것이 된다.

태자부루는 산동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가한성(可汗城, 낭야성)에서의 일을 마치고 번한 낭야를 대동하고서 도산(塗山)을 향하여 남쪽으로 행차하였다. 도산(塗山)은 회수(淮水) 하류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회수 남쪽은 양자강의 하류에 해당한다. 가한성은 특히 요순의 나라의 정세를 파악하고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기전2311년에 개축되었던, 번한의 수도인 오덕지(五德地) 중의 하나로서 남경(南京)에 해당한다.

홍수의 범람은 양자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사악에 걸쳐 있었던 것이 되는데, 우(禹)가 치수기념비(治水記念碑)를 세운 곳이 양자강 남쪽에 위치한 남악(南岳) 형산(衡山) 구루봉인 것을 보면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남쪽지역이 홍수가 가장 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사공(司空) 우(禹)의 백마제(白馬祭)와 백일기도]


서기전2280년부터 서기전2267년 갑술년까지 13년이 지나도록 치수(治水)에 성공치 못하여, 모산(茅山, 회계산)에 올라 중원 땅을 개화(開化)하신 천군(天君) 태호복희씨를 참배하였다가, 자허선인(紫虛仙人)의 가르침을 받아 순임금에게 간(諫)하여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의 조정에 치수(治水)의 구원(救援)를 요청하게 하였던 사공(司空) 우(禹)는, 그 이후로 택일을 하여 목욕재계하면서 천사(天使)를 영접(迎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허선인(紫虛仙人)의 가르침을 받기 이전에, 치수에 진척이 없던 우(禹)는 동서남북의 사악(四嶽)에 올라 아무리 궁리를 하여도 방책을 찾지 못하였다. 그리하던 차에 자허선인으로부터 태자부루를 반드시 뵙게 되어 치수법(治水법)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던 말씀을 들었던 것이며, 이때 우(禹)는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에 찼고, 이후 한치도 의심함이 없이 매일매일 목욕재계로써 정성(精誠)을 다하면서 기다렸던 것이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단군조선 조정에서 파견할 천사(天使)로서 진한(眞韓) 태자부루가 단군왕검 천제(天帝)의 명을 받아 친히 행차하실 것이라는 소식을 미리 접한 우(禹)는 그날로부터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우(禹)는 택일하여 회계산에 올라 백마(白馬)를 잡아 하늘에 제(祭)를 올리고 백일동안 목욕재계하였다. 매일매일 삼신(三神)께 제사를 지냈다. 그러던 중 우(禹)는 천사(天使)의 임무를 띠고 오시는 태자부루를 꿈에서 수차례 뵙기도 하였다. 오월춘추(吳越春秋) 무여외전(無餘外傳)에는 우(禹)가 꿈에 붉게 수(繡)를 놓은 옷을 입은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를 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 창수사자가 곧 태자부루인 것이다.

현이(玄夷)는 방향으로 보면 북쪽에 위치한 이(夷)인데, 순임금의 나라에서 보면 단군조선의 수도인 아사달(阿斯達)은 저 멀리 5,000리 이상 떨어진 동북쪽에 위치한다. 한편, 한배달조선의 구족 중에 현족(玄族)이 있어 지금의 흑룡강 유역에 걸쳐 살고 있었다. 이로써 현이(玄夷)는 북쪽에 위치하였던 단군조선 본국 조정(朝廷)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창수(蒼水)는 그냥 푸른 물로서 동쪽의 물이 아니라 동북쪽에 있는 검푸른 물이다. 다른 말로 북극수(北極水)인 것이다. 그리하여 창수사자는 북극수의 사자이며, 북극수는 곧 천제(天帝)가 머무는 곳인 바, 고로 창수사자(使者)는 천제의 사자인 천사(天使)인 것이다. 태자부루가 곧 천사이다. 그래서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는 곧 순임금의 상국(上國) 즉 천국(天國)인 단군조선의 사자(使者), 진한(眞韓) 태자부루로서 천사(天使)인 것이다. 고로 태자부루(太子扶婁)는 천제자(天帝子)로서 북극수(北極水)의 정자(精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