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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55]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8


서기전2288년에 황하이남으로 양자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발생한 소위 요순시대 9년 대홍수의 치수를 곤(鯤)이 맡고 있었다. 당시 요임금의 섭정이던 순(舜)이 곤에게 맡겼던 것이다.


[곤(鯤)의 처형과 곤의 아들 사공(司空) 우(禹)]


곤(鯤)은 치수에 온 힘을 기울였으나, 오행(五行)의 원리에 따른 치수법을 알지 못하였음은 물론 치수법을 전수(傳授)받지 못하여 치수에 성공치 못하였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기를 9년이나 되었다.

요순시대 9년 대홍수는 서기전3400년경 배달나라 시대에 여와(女媧)의 대홍수 이후에 일어난 홍수 중에서 가장 큰 홍수였다. 여와시대 홍수는 부주산(不周山)이 무너지는 등 땅이 크게 부서진 홍수였으며, 요순시대 홍수는 땅의 대부분이 물에 잠겨 물이 빠지지 않는 홍수였다.

서기전2284년에 순(舜)이 천자(天子) 자리를 차지한 후 서기전2280년에 이르렀으나, 곤은 치수에 전혀 성공하지 못하였는데, 만약 요임금과 순임금이 치수법(治水法)을 알고 있었다라면, 분명히 우에게 치수법을 전수하여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9년동안 곤이 치수법을 몰라 헤맸다는 것은 당시 요순의 나라에는 제대로 된 치수법이 없었다는 결론이 된다.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내 홍범구주(洪範九疇)에 관한 내용이나 주서(周書) 홍범구주편에 곤의 치수에 관한 내용이 있다. 여기서는 곤이 치수를 한답시고 제멋대로 하다가 성공치 못하여 결국 순임금이 처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서기전2280년에 순임금은 우산(羽山)에서 곤(鯤)에게 치수에 실패한 죄를 물어 처형하였다. 이에 순임금은 곤의 아들 우(禹)에게 치수를 맡겼다. 이 우(禹)가 사공(司空)의 벼슬을 맡아 치수를 담당한 것이다. 사공(司空)은 당시 건설담당으로서 치수를 겸하였던 것이 된다. 그래서 우(禹)를 우(虞) 사공(司空) 우(禹)라 한다. 우(虞)는 순임금의 나라이름이다. 이리하여 이후 사공(司空) 우(禹)의 13년간의 치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사공(司空) 우(禹)의 치수]


서기전2280년에 아버지 곤(鯤)의 뒤를 이어 요순시대 9년 대홍수의 치수를 맡게 된 우(禹)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온힘을 기울였다. 직접 홍수로 잠긴 땅에 들어가 배를 타고 돌아다니며 살피고, 나무신을 신고 산에 올라 홍수가 난 땅을 내려다 보며 골몰히 생각하여 치수방법을 찾았다. 평지를 갈 때는 수레를 타고, 진흙탕길에는 진흙썰매를 타고 다니며 일을 보고, 산기슭에서 잠을 자는 등 13년간이나 집을 떠나 있었고, 심지어 짚 앞을 지나가는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서 치수에 매달렸던 것이다.

우(禹)는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때로는 둑을 쌓고 때로는 둑을 부수고 하면서 물길을 막거나 터고 하였다. 그러나, 막은 둑은 곧 터지고 터진 물길은 곧 막히는 등 하면서 물길은 흐트려졌다. 노력은 노력대로 다 하였어도 홍수는 홍수대로 그대로였다. 22년간 물에 잠긴 땅은 좀처럼 햇빛에 드러나지 않았다.  

백성들로서는 농사지을 땅과 집이 물에 잠겨 먹고 자는 문제가 컸으며, 더하여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높은 언덕이나 산기슭으로 피하여 마을을 이루면 거기로 뱀과 쥐들이 우글거렸다. 밭과 집을 물에 내어 주고 피해살기를 22년간이나 하면서 백성들은 배가 고팠고 입을 옷이 없었으며 서서히 백성들의 원망이 쌓여가고 있었다.

우(禹)는 처음 치수를 시작할 때는 의욕이 넘쳐 몇 년이 안가 치수가 완성될 줄 알았다. 그러나, 해가 가면 갈수록 자신의 능력 밖에 있음을 점점 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는 포기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였다.

이러한 우(禹)의 치수에 대한 노력이 사기(史記) 등 중국기록에 구구절절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치수의 성공에 관한 역사는 신화식으로 비밀스럽게 기록되어 있기도 하며, 심지어는 실제의 역사를 숨기고 전적으로 우(禹)의 공로(功勞)로 만들어 놓고 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虞) 사공(司空) 우(禹)의 치수(治水)의 역사는 실제로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치수(治水)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것은 천하왕국(天下王國)인 천자국(天子國)의 천자(天子) 순(舜)의 요청으로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이 주관(主管)하여 치수법(治水法)을 우(禹)에게 전수(傳授)함으로써, 치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서기전2280년부터 치수에 전념하던 우(禹)는 서기전2267년까지 13년이나 지나도록 치수를 완성치 못하였는데, 서기전2288년 대홍수가 발생한 때부터 벌써 22년이나 되었다. 우는 그동안 자신이 노력한 대가가 없음을 반성하고 노심초사 끝에 진정한 치수법(治水法)을 찾아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