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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5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


서기전2280년경 순임금으로부터 치수담당으로 명(命)을 받은 사공(司空) 우(禹)는 서기전2267년까지 13년간 쌓고 고치고 부수고, 다시 쌓고 고치고 부수고 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였어도 치수를 완성하지 못하였다.

[사공(司空) 우(禹), 자허선인(紫虛仙人)께 가르침을 구하다]


우(禹)는 처음 가졌던 자신감이 13년을 지나는 사이에 서서히 퇴색하게 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치수를 마무리하지 못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손을 보면 볼수록 물길은 흐트려져 갔고 자신이 설치한 둑과 설치물(設置物)들은 점점 무용지물이 되어 가는 것을 눈뜨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자신이 신하로서 업무를 보고 있는 우(虞)나라의 땅 안에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우(禹)는 치수를 마무리할 방법을 우(虞)나라 밖에서 찾기로 하였다. 이에 우(禹)는 단군조선 번한관경의 최남단 지역인 모산(茅山, 會稽山)에 올라 태호복희씨(太皓伏羲氏)의 유적지를 찾아 참배하고 치수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이때 우(禹)의 머릿속에 번쩍 하고 지나가는 뭔가가 있었다. 바로 자허선인(紫虛仙人)이었다.

태호복희씨는 서기전3528년에 산동지역의 서편의 진(陳) 땅에 나라를 세우니 진(震)이라 불린다. 고대중국에서 볼 때는 태호복희씨의 나라는 그들 나라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주문왕팔괘도(周文王八卦圖)에서처럼 진(震)을 동(東)으로 대입하고 있다.

우(禹)를 태호복희씨의 후손인 풍이(風夷) 출신이라고도 하고, 남이(藍夷) 출신이라고도 한다. 우(禹)의 성씨가 되는 사(姒)는 태호복희씨의 후손들이 삼은 성씨이기도 하다. 남이(藍夷)는 치우천왕의 백성들로서 치우천왕의 후손이라 불린다. 즉 우(禹)는 동쪽이 되는 산동지역이나 그 부근 출신이라는 말이 된다. 실제로 우(禹)는 도산(塗山) 출신의 부인(夫人)을 두었다. 그래서 우(禹)도 결국은 동이(東夷) 출신이 되는 셈이다.

우(禹)는 요(堯)임금의 무리라고 기록된다. 요임금의 무리라 함은 순(舜)임금이 동이(東夷) 출신으로서 요(堯)임금을 유폐시키고 천자자리를 찬탈한 데 대한 반감을 우(禹)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며, 더욱이 아버지 곤을 처형한 순임금에 대한 복수심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에서 연유한 것이 된다.

태호복희씨에게 제(祭)를 올린 우(禹)는 지체없이 자허선인(紫虛仙人)을 찾아 뵈었다. 예의를 갖춘 후 우(禹)는 공손히 자허선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아뢰었다. 이때 자허선인은 우(禹)의 마음속을 꽤뚫어 보고 있었다.

자허선인은 우(禹)의 진정성을 읽고서, 머뭇거림없이 방법을 일러 주었다. 즉, 22년간 이어진 대홍수가 비록 우(虞)나라 땅 안에서 처음 발생하였으나,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의 번한관경 내 산동지역에서 양자강 하류에 걸치는 광범위한 지역에 물이 빠지지 아니한 채 넘쳐 있으므로, 이곳들을 손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일려 주었다.

이에 우(禹)는 그 해결책을 여쭈었다. 이에 대하여 자허선인은 그동안 순임금의 효불효(孝不孝)와 충불충(忠不忠)에 관한 역사를 집어주며, 그대가 할 일은 순임금을 설득하여 효충(孝忠)으로 되돌아가도록 간청을 올려 설득시키는 것이라 하였다. 만약 순임금을 설득한다면 상국(上國)의 천제(天帝)께서 반드시 천사(天使)를 보내시어 구원(救援)하실 것이라 장담하였다.

우(禹)는 자허선인의 허심탄회한 말씀을 수십번도 더 되뇌였다. 문제는 순임금이 푸는 것이었다. 순임금이 풀지 못한다면, 대홍수의 치수는 아마도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다가왔다.

자허선인에게 절을 올리고 물러나온 우(禹)는 순임금을 설득시키는 방법을 여러모로 모색하였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아버지 곤의 전철을 밟게 될까 심히 우려되었다. 이리하여 우(禹)는 결심을 하였다. 즉, 순임금을 알현하고 우(虞)나라 백성만이 아니라 상국(上國)의 백성들도 구한다는 명분을 살리라 간청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우(禹)의 상소(上疏)]


우(禹)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순임금을 알현하였다. 한시가 급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처형 당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사공 우는 순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순임금이, 부친(父親)을 따라 상국(上國)의 환부(鰥夫)로서의 직(職)을 성실히 수행하다가, 오로지 백성들을 위하여 불효불충(不孝不忠)을 범하면서 요(堯)임금의 정치를 도와 바로 잡기 위한 목적으로 협조하였던 것이며, 더나아가 군신(君臣)의 도리를 어겨 요임금으로부터 천자 자리를 힘으로 찬탈한 행위는 진정으로 권력욕 때문에 백성들을 더 잘 다스리기 위한 욕심이 앞서서 범한 불충(不忠)한 것이었음을 실토함으로써, 단군왕검 천제(天帝)의 노여움을 풀고 용서를 구하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하면, 천사(天使) 유호씨도 마음을 풀 것이라 아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