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2324년에 요(堯)의 굴복(屈服)을 받은 천사(天使) 유호씨(有戶氏)는 단군왕검 천왕(天王)께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하면서, 요(堯)를 진정으로 믿지 못하니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上疏)도 함께 올렸다.
[천자(天子) 요(堯)와 장당경(藏唐京)]
유호씨가 서기전2324년에 요의 항복을 받고서 단군왕검 천왕께 보고함으로써, 요는 정식으로 천자(天子)로 인정받게 되었다. 천자(天子)는 천왕(天王)으로부터 봉함을 받아 세습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천하왕(天下王)이다. 즉, 요임금의 당(唐)나라는 단군조선 천국(天國)의 삼한관경 밖에 있는 천하왕국(天下王國)으로서 천자국(天子國)인 것이다.
이에, 단군왕검 천왕은 장당(藏唐)이라는 곳을 설치하도록 하여 주기적으로 천자 요(堯)로 하여금 국정(國政)을 보고하고 조공(朝貢)하도록 조치하였다. 그 장당(藏唐)이라는 곳이 곧 당요(唐堯)를 안치(安置)한 곳이며, 개원(開原) 또는 개사원(蓋斯原)이라고도 불리는 땅이고 지금의 심양(審陽)이라는 땅이며, 단군조선의 마지막 수도이던 장당경(藏唐京)이다.
장당경은 서기전1285년에 후기 단군조선의 단군이 된 색불루 단군이 조부(祖父)인 우현왕(右賢王) 고등(高登)의 사당(廟)을 모신 곳이기도 하다. 즉 원래는 개사원(蓋斯原)이라는 곳에 장당(藏唐)을 설치하면서부터 단군조선의 별궁(別宮) 또는 이궁(離宮)이 있던 곳으로서 장당경(藏唐京)이라 불린 것이 된다.
[요중(遼中) 12성(城) 축조와 가한성(可汗城) 개축]
또한, 유호씨는 서기전2314년에 순(舜)이 요(堯)에게 협조하여 등용되기 이전인 서기전2320년경에 요(堯)와 순(舜)의 소행(所行)을 단군왕검 천왕(天王)께 보고하면서 미리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고(告)하였다.
이에 따라, 단군왕검 천왕은 번한(番韓) 땅의 요중(遼中)에 12성(城)를 축조하도록 조치하였다. 요중(遼中)이라는 지역은 요동(遼東)과 요서(遼西)를 포함하는 지역으로서, 당시 요수(遼水)가 되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를 기준으로 동서 지역에 12성을 축성케 하였던 것이다. 당시 요동지역은 지금의 영정하에서 난하(灤河)에 걸치는 지역이다.
이후 서기전2314년에 순(舜)이 요(堯)에게 등용되어 요임금의 사람이 되자, 유호씨는 또다시 단군왕검 천왕(天王)께 이 사실을 보고하고 대책이 시급하다고 고(告)하였으며, 이에 단군왕검 천왕은 산동반도 남쪽에 위치한 낭야성(琅耶城)을 개축하도록 하고 가한성(可汗城)이라 부르도록 하였다.
서기전2311년 경인년(庚寅年)에 번한 치두남이 훙(薨)하고 낭야(琅耶)가 2대 번한(番韓)이 되었다. 이해에 가한성(可汗城)의 개축(改築)이 완료되었다.
서기전2320년경 치두남(蚩頭男) 번한(番韓) 시절부터 시작된 요중(遼中) 12성(城)도 축조가 2대 낭야 번한 11년인 서기전2301년 경자년(庚子年)에 모두 완료되었다. 이로써 당요(唐堯)의 정세(政勢)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요중 12성은, 험독(險瀆), 영지(永支), 탕지(湯池), 통도(桶道), 거용(渠鄘),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嶺), 갈산(碣山), 여성(黎城)이다.
[순(舜)의 섭정과 요순시대 9년 대홍수]
서기전2314년에 요임금에게 등용된 순(舜)은 20년이 지난 서기전2294년 50세이던 해에 섭정(攝政)이 되었다. 즉 요임금이 순을 신임(信任)하여 모든 정사(政事)를 맡겼던 것이다. 이에 따라 순은 권력행사에 거칠 것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서기전2288년에 대홍수가 발생하였다. 이 대홍수는 소위 요순시대 9년 대홍수라 불린다. 황하 이남으로 양자강에 걸치는 대홍수였다. 섭정을 하던 순(舜)은 곤(鯤)에게 치수를 맡겼다.
치수를 맡은 곤(鯤)은 여러모로 궁리를 하며 치수에 힘썼으나 물에 잠긴 땅은 여전하여 백성들의 삶은 궁핍하기 그지 없었다. 곤은 결국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치수에 성공치 못하고 9년이나 끌게 되었다.
[단군조선의 대홍수와 치수법(治水法)]
서기전 2284년 정사년(丁巳年)에 단군조선의 우수주(牛首州) 지역에도 대홍수가 발생하였다. 이때 단군왕검 천왕은 풍백(風伯) 팽우(彭虞)에게 치수를 맡겼으며, 이에 팽우는 큰 피해 없이 치수에 성공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고, 우수주에 치수기념비를 세웠다. 단군조선에는 치수의 비결을 알고 있었으며 유효적절하게 활용하였던 것이다.
그 치수법(治水法)이란 신시(神市) 황부(黃部)의 중경(中經)에 실린 비결(秘訣)로서, 서기전2700년경 배달나라의 자부선인(紫府仙人)이 해와 달과 오행(五行)의 수리(數理)를 따져서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인 칠성력(七星曆)을 만들었고, 뒤에 창기소(蒼其蘇)라는 사람이 오행(五行)의 법(法)을 부연하여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밝혔던 그 치수법이다. 소위 오행(五行)은 수목화토금(水木火土金)이며,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의 이치로 물을 다스리는 법칙을 만드니 곧 오행치수법인 것이다.
요순시대 9년 대홍수와 단군조선의 대홍수에 관한 역사가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는 화악산 설화에 전한다. 이 설화에는 고대중국의 천자(天子)인 순(舜)임금과 단군(檀君)의 사자(使者)로서 단군(檀君)으로 상징화되어 묘사되는 순의 동생 유상(有象)과의 대적(對敵) 관계 및 치수기념비가 돌로 된 배(舟)로 변형묘사되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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