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35] 배달나라 제후국의 역사 3


단웅국은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 炎帝國)이 서기전2697년 갑자년에 배달나라 제14대 자오지(慈烏支) 한웅(桓雄) 즉 치우천왕(治尤天王)에게 평정당하여, 제유(帝楡, 楡罔)의 아들 괴(魁)가 공상(空桑)에 봉해진 나라이다.


5. 단웅국(檀熊國)
 

단웅국은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 炎帝國)이 서기전2697년 갑자년에 배달나라 제14대 자오지(慈烏支) 한웅(桓雄) 즉 치우천왕(治尤天王)에게 평정당하여, 제유(帝楡, 楡罔)의 아들 괴(魁)가 공상(空桑)에 봉해진 나라이다.

처음 염제국은 서기전3218년 계미년(癸未年)에 신농씨(神農氏)가 열었고, 말기에 이르러 쇠퇴하므로 다른 제후국들이 병탄하려 욕심을 내던 차에 치우천왕이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하여 서기전2697년 갑자년에 평정하였던 것이다.

염제신농국은 웅족(熊族)의 나라이다. 배달나라 본국과 제후국인 웅씨족의 나라가 결합된 나라로서 단웅국(檀熊國)이라 불리는 것이 된다.

유망(楡罔)이 염제국의 왕이 던 때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유웅국(有熊國)의 왕이던 헌원(軒轅)이 천하를 욕심을 내어 판천(阪泉)이라는 들에서 유망과 싸워 이기긴 하였으나, 이때 배달나라 치우천왕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염제국을 공격하여 유망을 항복시키고 먼저 평정(平定)하였던 것이다.

치우천왕이 염제국을 치자 유망은 소호(少昊)를 선봉장으로 내세웠으나 곧바로 도주를 하였으며 결국 유망과 소호는 치우천왕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치우천왕이 유망을 폐하고 그 아들 괴를 세워 봉한 것이다.

제1대 제괴(帝魁)는 서기전2697년 갑자년(甲子年)부터 서기전2606년까지 91년간 다스렸으며, 수도는 공상(空桑, 陳留)이다.

제괴는 서기전2691년에 자부선인(紫府仙人) 광성자(光成子)를 광명왕(光明王)으로 봉하였다.

제2대 제망(帝罔)은 서기전2606년 을미년(乙未年)부터 서기전2535년까지 71년간 다스렸다. 서기전2550년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의 사당을 세워 양현사(養賢祠)라 하였다.

제3대 제성(帝成)은 서기전2535년 병오년(丙午年)부터 서기전2459년까지 76년간 다스렸다. 서기전2523년에 유웅국의 왕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침입을 받았으나 화평을 하였다. 서기전2476년에 치우천왕을 모신 사당인 치우묘(蚩尤廟)를 건립하였다. 서기전2472년에 유웅국의 전욱고양씨와 수호하였다.

제4대 태제(泰帝)는 서기전2459년 임술년(壬戌年)부터 서기전2399년까지 60년간 다스렸다. 서기전2414년에 염제신농국의 역사를 지었다. 서기전2457년 갑자년에 단군왕검이 탄생한 것으로 기록되기도 하는 바, 단군왕검의 조부(祖父)로서 한인(桓因)을 태제로 대입한 것이 된다.

제5대 홍제(洪帝)는 서기전2399년 임술년(壬戌年)부터 서기전2333년까지 66년간 다스렸다. 서기전2398년 홍제가 유백녀(楡伯女) 신웅(神熊)을 비로 삼았다. 서기전2392년에 유웅국의 제곡고신씨가 침입하였으나 물리쳤다.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아버지는 배달나라 거불단(居弗檀) 한웅(桓雄), 어머니는 홍제의 딸로서 서기전2370년 5월 2일 인시(寅時)에 탄생하셨다. 그래서 홍제는 단군왕검의 외조부가 된다. 서기전2360년 유웅국의 제지(帝摯)가 침입하였으나 토벌하였다. 서기전2357년에 제지(帝摯)와 요(堯)가 전쟁을 하였는데 요가 승리하여 천자자리를 차지하였다.

서기전2357년 단군왕검이 14세 되던 해에 홍제가 외손자(外孫子)인 단군왕검에게 섭정을 맡겼다. 이에 단군왕검이 비왕(裨王)으로 섭정하기를 서기전2333년까지 24년간이 된다. 
 

금(金)나라는 단군왕검을 개천홍성제(開天弘聖帝)라 하는 바, 비왕(裨王) 시절의 단군왕검은 성제(聖帝)라 불리는 것이다.

서기전2357년에 유웅국의 왕이 된 요(堯)가 서기전2349년에 침입하므로 격퇴하였으며, 서기전2335년에 재침하였고, 서기전2334년에는 기습침략하였다.

제3차 기습침입시에 단군왕검은 순방정치를 하는 중이었으며, 요가 단웅국의 왕성을 점령하여 버렸다. 이때 홍제가 전쟁 중에 붕하므로 단군왕검은 돌아갈 왕성을 잃었다. 이에 단군왕검은 안전지대인 동북의 아사달을 택하여 측근의 무리 800을 이끌고 수많은 강과 산고개를 넘어면서 3,000리길을 이동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염제신농국은 단군왕검이 비왕(裨王)으로 섭정하던 나라이며, 단군조선의 선대국이면서 배달나라와 함께 단군왕검이 그 역사적 정통성을 이은 나라가 된다.

배달나라 말기에 요(堯)의 작란(作亂)으로 말마암아 세상이 시끄러웠는데, 서기전2333년에 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이 나라를 정비한 후 10년만에 군사를 일으켜 요를 토벌(討伐)하였던 것이며, 이에 요는 정세를 바로 읽고서 단군조선에 굴복하여 정식 천자(天子)로 승인받았던 것이다.

서기전2357년 도(陶)라는 땅에서 군사를 일으킨 요(堯)가 이복형 제지(帝摯)를 멸하고 유웅국(有熊國)을 차지하고서 천자가 된 후, 제왕(帝王) 노릇을 하면서 이웃 나라를 병탄하고 마음대로 9주를 설치하였으며, 나아가 태양력(太陽曆)인 배달나라 역법(曆法)을 폐하고 명협(蓂莢)의 풀에 의지한 음력(陰曆)을 전용함으로써 배달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혔던 것인데, 서기전2324년경에 단군왕검이 요를 굴복시키고 다시 질서를 바로 잡아 회복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