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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36] 단군왕검의 아리랑 여정 1


단군왕검(檀君王儉)과 병립하였다는 소위 요임금은 배달나라 시대의 제후국이던 유웅국(有熊國)의 왕으로서, 서기전2401년에 출생하고, 서기전2383년경에 유웅국 왕이던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에 의하여 도(陶)에 봉해졌으며, 서기전 2357년 갑자년에 유웅국 왕이던 제지(帝摯)를 쳐서 멸하고 천자(天子) 자리를 차지하였다. 천자(天子)는 천왕(天王), 천국(天國)의 자작(子爵)이라는 제후이다.


1. 요(堯)의 정체


요(堯)는 제곡고신씨의 아들로서 제지와는 이복형제간이다. 제곡고신씨의 아들로는, 대를 이어 유웅국 왕이 된 제지(帝摯), 요(堯), 설(契), 후직(后稷) 등이 있었다.

설은 은나라 시조인 탕(湯)의 조상이 되고, 후직은 주나라의 시조인 무왕(武王)의 조상이 된다.

서기전2436년에 유웅국 왕이 된 제곡고신씨는 서기전2366년까지 70년간 다스리다 아들 제지(帝摯)가 이어 다스렸는데, 서기전2357년에 유웅국의 소국인 도(陶)를 다스리던 요(堯)가 군사를 일으켜 제지를 멸하였다.

이는 요가 권력에 욕심이 멀어 형을 쳐서 나라를 빼앗고 천자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이후 요는 배달나라 중원지역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다.
 

2. 작란자(作亂者) 요(堯)
 

서기전2357년에 유웅국 왕이 된 요(堯)는 제왕(帝王)을 참칭하면서 함부로 땅을 차지하여 구주(九州)로 나누었다. 수도는 평양(平陽)에 두었는데, 서안의 동쪽으로 태원(太原)의 남쪽이자 황하(黃河) 남류(南流)와 동류(東流) 지역 사이의 땅이 된다.

특히 요는 단군왕검의 나라를 3차례나 침범하였다.

단군왕검은 서기전2357년에 단웅국(檀熊國) 홍제(洪帝)의 외손(外孫)으로서 14세의 나이로 비왕(裨王)이 되었다. 비왕이라 함은 보조하여 섭정(攝政)을 하는 왕이다. 서기전2349년에 요가 단웅국(檀熊國)을 침범하였다가 격퇴되었다.

이후 서기전2335년에도 요(堯)는 단웅국을 침범하였다가 격퇴되었다.

그런데, 서기전2334년에는 요가 기습침략을 하였다.

서기전2334년 당시에 단군왕검은 무리 800을 이끌고 왕성을 나가 순방정치를 하고 있었다. 요(堯)가 이틈을 타서 기습침략을 하여 왕성을 점령해 버렸다. 이때 왕성 안에 있던 홍제(洪帝)가 전쟁 와중에 붕어하였다.
 

3. 성군(聖君) 단군왕검의 족보(族譜)


단군왕검은 서기전2370년 5월 2일 인시(寅時)에 탄생하셨다.

아버지는 배달나라 본국의 18대 거불단(居弗檀) 한웅(桓雄)으로 단웅(檀雄)이라고도 하며, 어머니는 단웅국(檀熊國) 제5대 홍제(洪帝)의 딸이다. 단웅국은 웅씨족(熊氏族)의 나라로서 선대는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이다.

서기전2357년에 14세의 나이로 단웅국 홍제의 사랑으로 비왕이 되어 섭정을 시작하였으며, 서기전2333년 38세까지 24년간 다스렸다. 단군왕검은 순방정치를 하면서 덕치(德治)를 펼쳐 백성들로부터 성군(聖君)으로서 숭앙을 받았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단군(檀君)은 박달임금이라는 말로서 배달나라의 작은 임금이라는 뜻이며, 배달나라 본 임금이 천왕(天王)이므로 아들로서 천군(天君)이기도 하다. 천군은 천상, 천국의 작은 임금으로서 하늘에 제사를 올릴 권한을 가진다. 그래서 천군을 제사장이라고도 한다. 왕검(王儉)은 임금이라는 말이며, 관경을 다스리는 감독자이자 책임자이다. 왕검(王儉)은 곧 임검(壬儉)인 것이다.

임금의 순서로 보면, 제(帝), 왕(王), 군(君)이 된다. 하늘나라 즉 천국(天國)이라는 의미의 천(天)자를 붙이면 천제(天帝), 천왕(天王), 천군(天君)이 된다. 자(子)는 제후로서 군(君)아래가 되며, 천(天)을 붙이면 천자(天子)가 되는데, 이는 하늘나라의 자작이라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단군조선의 나라는 천군(天君) 이상의 나라이며, 고대중국은 천자(天子)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4. 단웅국(檀熊國)의 멸망과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피난의 아리랑 여정
 

서기전2334년에 세상을 어지럽힌 반란자 요(堯)가 단웅국(檀熊國)의 왕성을 기습점령하였고, 이때 단웅국 왕인 홍제(洪帝)가 붕하니, 무리를 이끌고 순방정치를 하던 단군왕검은 비보(悲報)를 접하고, 요의 폭돌한 난을 피하여 측근의 무리800을 인솔하여 동북의 아사달로 향했다.

단웅국은 산동(山東) 지역에 있었다. 서기전2697년 갑자년(甲子年)에 치우천왕(治尤天王)이 염제국(炎帝國)을 평정하고 괴(魁)를 공상(空桑)에 봉하여 단웅국 왕으로 삼았는데, 공상은 산동지역에 있었다. 그 이전의 염제신농국은 춘추시대의 노(魯)나라 땅이던 곡부(曲阜)를 수도로 하였다. 공상은 곡부의 동쪽 지역이 된다.

단군왕검은 공상의 왕성을 나와 순방(巡訪)을 하던 차에 요의 기습침략으로 나라를 잃었던 것이다. 이에 단군왕검은 세태를 파악하고 중원(中原)의 난을 피하여 동북으로 3,000리 이상 떨어진 아사달(阿斯達)로 측근의 무리 800을 이끌고 이동하였던 것이다.

서기전3897년 갑자년에 한웅천왕(桓雄天王)이 하늘나라인 한국(桓國)에서 서남쪽으로 1만리 이상 남하하여 태백산(太白山)에 신시(神市)를 열어 배달나라로 삼은 지역을 뒤에 남겨두고, 원래의 한국(桓國)의 중심이 되는 땅으로 복귀한 것이 된다.

즉 아사달 지역은 서기전7197년 천산(天山)을 중심으로 한 한국(桓國)이 시작된 이후,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여 서기전5000년경에 시작된 한인(桓因) 천제(天帝)가 다스린 한국(桓國)의 중심지로서 흑수백산(黑水白山)의 사이에 있는 땅이다. 흑수는 흑룡강이며, 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이다. 아사달은 그 사이에 있는 지금의 하얼빈이다. 하얼빈(哈爾濱)은 하늘물가, 즉 천하(天河)인 하늘물이 있는 물가 지역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