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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37] 단군왕검의 아리랑 여정 2


단군왕검은 서기전2334년에 단웅국(檀熊國)을 반란자 요(堯)에게 기습침략으로 빼앗기고, 측근의 무리800을 인솔하여 동북의 아사달을 향하여 이동하였다.


5. 한 맺힌 아리랑(阿里嶺)과 홍익인간 세상 복원(復元)을 약속하며


지나는 길에 수많은 백성들이 소식을 듣고 길을 나서며 따라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단군왕검은 언제 또다시 요가(堯)가 난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체할 수 없어 발길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다. 단군왕검과 무리800이 가는 길에는 수 많은 강과 산고개가 있었다. 곳곳에서 백성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백성들이 함께 가기에는 불가능한 먼길이었다. 그리하여 단군왕검은 백성들에게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눈물로써 달래었다. 이에 단군왕검을 뒤따르다 뒤에 처진 백성들이 단군왕검과 함께 가지 못한 심정을 아래와 같이 불렀으리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특히 산고개를 함께 따라 넘지 못하여 단군왕검의 행차를 놓쳐 뒤에 처져 남은 백성들은, 순방(巡訪)을 하면서 덕치(德治)를 베풀던 단군왕검을 기리며 노래로써 한(恨)을 달래었다. 아리랑은 아리령(阿里嶺)이라는 말에서 나왔으며, 아리령은 큰 고개를 의미한다. 강은 배를 만들어 건널 수 있으나, 높은 산고개는 힘이 들어 쉽게 넘지 못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아리랑이라는 노래는 그 연원(沿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노래이다. 그러나, 노래 내용을 보면 큰 고개를 넘지 못하고 앞서 간 님을 따라가지 못하여 원망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앞서간 님이 발병이라도 나서 함께 가고 싶은 심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상황으로 보아 아리랑은 서기전2334년 단군왕검이 요(堯)의 반란으로 인하여 비왕으로 섭정하던 단웅국(檀熊國)이라는 나라를 잃고 수 많은 강과 산고개를 넘어며 3,000리 이상 떨어진 동북의 아사달(阿斯達)이라는 안전지대로 이동할 때, 따라가고자 하였으나 길이 멀고 힘이 들어 따라가지 못하였던 뒤에 남게 된 백성들이 그 한(恨)을 달려며 부르던 노래가 틀림없는 것이다.

이 아리랑이라는 노래는 서기전238년경 단군조선이 사실상 망하고 삼한(三韓)의 유민(遺民)들이 동(東)으로 이동할 때 노래도 함께 전해진 것이 되는 것이다.

수많은 백성들을 뒤에 남겨두고 발길을 재촉하여 아사달에 도착하여 나라를 세운 단군왕검은, 함께 데려 오지 못한 뒤에 남은 백성들과 한 약속을 지켰다. 즉 서기전2333년 10월 3일에 나라를 세우고 10년이 되는 해인 서기전2324년에 군사를 파견하여 요(堯)를 토벌함으로써 뒤에 남았던 백성들을 다시 단군왕검의 백성으로 온전히 삼았던 것이다. 특히 산동지역에 남국(藍國)과 청구(靑邱)를 봉하여 그 백성들을 번한(番韓) 관경에 속하게 하였다.
 

6. 구족(九族)의 추대(推戴)와 조선(朝鮮) 개국(開國)


아사달이라는 아침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에 자리를 잡은 단군왕검은, 1년이 지나는 사이에 사방팔방에서 제후국으로 자치를 행하던 구족(九族)의 수장들이 달려와 임금이 되어주기를 축원하며 추대하자, 서기전2333년 무진년 해월(亥月, 10월) 3일에 나라를 열었다.

단군왕검은, 서기전2333년 배달나라 거불단(居弗檀) 한웅(桓雄)이 돌아가시자 배달나라 한웅의 아들로서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전수(傳授)받았다.

이리하여 단군왕검은 배달나라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으며, 단웅국(檀熊國)의 계승과 함께 홍익인간 세상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옛 한국(桓國)의 중심지가 되는 흑수백산(黑水白山)의 사이에 터를 잡아, 관경을 나누어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을 두었다. 진한은 북쪽, 마한은 남쪽, 번한은 서쪽에 두었다. 특히 번한 관경에는 단군왕검이 비왕으로 섭정하던 단웅국(檀熊國)이 있던 산동지역을 포함시켰다.

단군조선은 구족(九族)의 나라이다. 이 구족을 고대중국은 구이(九夷)라고 부른다. 원래 한국(桓國)의 구부(九部)의 부족으로서 구한(九桓)이라 한다. 그리하여 한국, 배달, 조선이 모두 구족의 나라인 것이다.

구족은, 황족(黃族), 양족(陽族), 우족(于族), 방족(方族), 견족(畎族), 현족(玄族), 백족(白族), 남족(藍族), 적족(赤族)이며, 고대중국은 이를 각 황이, 양이, 우이, 방이, 견이, 현이, 백이, 남이, 적이라 불렀다.

그런데, 고대중국의 시작이 되는 황제헌원의 나라가, 황족(黃族)에 속하는 웅족(熊族)이 지배층이 되고, 그 백성이 백족(白族)이 되는 나라이며, 후대에 황족(北夷, 北狄), 남족(藍族, 남이) 또는 풍족(風族, 풍이), 백족(西夷, 西戎), 적족(赤夷, 南蠻)이 혼잡되는 등 동서남북의 사이(四夷)를 뿌리로 한 나라가 된다. 고대중국은 별개의 나라가 아니라 배달나라 시대에 제후국으로서 출발한 배달겨레의 나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