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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32] 배달나라 연대기 역사 3


서기전2697년경부터 시작된 치우천왕과 헌원의 전쟁은 약 10년 후인 서기전2688년경에 종료되었는데, 자부선인(紫府仙人)의 가르침을 받은 헌원이 삼황내문경(三皇內門經)을 읽고 도를 깨달아 진정한 신하로 되돌아가 치우천왕에게 굴복하였던 것이다.

-청구(靑邱) 시대- 

이후 치우천왕은 오장군(吳將軍)을 보내어 서쪽 지역의 고신(高辛)을 쳐서 공을 세우게 하였다. 이로써 치우천왕은 12제후국을 모두 평정하고 세상은 다시 평화시대가 되었으며, 이후 서기전2383년경까지 약300년간은 거의 전쟁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없게 되었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치우천왕을 그들 중국의 천자(天子) 사상으로 윤색하여 천자였다는 식으로 묘사하였으나, 실은 제후격인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자를 봉(封)하는 본 임금인 천왕(天王)이었던 것이다. 치우천왕은 자오지(慈烏支) 한웅(桓雄)이라고도 하는데, 자오지는 치우와 같은 말로서 다른 표기가 되는 것이다.

치우천왕의 능(陵)은 산동성(山東省) 동평군(東平郡) 수장현(壽張縣) 관향성(關鄕城) 가운데 있다. 높이가 7척으로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때 주민들이 치우천왕을 동황태일(東皇太一)로 모시면서 10월이면 제사를 올렸고, 붉은 기운이 벋쳐 이를 치우기(蚩尤旗)라 불렀다. 한나라 시조 유방(劉邦)은 장안(長安)에 치우의 사당을 세우기도 하였다.

12제후국은 대표적인 제후국을 가리키는 것이며, 동서남북중 오방(五方)의 큰 제후국과 고양(高陽), 고신(高辛), 염제국(炎帝國) 등 오방에 봉해진 제후국들을 모두 가리키는 것이다.

배달나라 시대에 중앙에는 오가(五加)가 있고 지방에는 오부(五部)가 있으니, 동서남북중의 청부(靑部), 백부(白部), 적부(赤部), 흑부(黑部), 황부(黃部)인데, 치우천왕 시대에 오부의 천자 중 청제(靑帝)는 창힐(蒼詰), 백제(白帝)는 소호(少昊), 흑제(黑帝)는 대요(大撓), 적제(赤帝)는 축융(祝融), 황제(黃帝)는 헌원(軒轅)이다.

흑제 대요의 나라는 탁록의 북쪽에 있었고, 그 동쪽으로 산동지역을 포함한 나라가 청제 창힐의 나라가 되며, 탁을 기준으로 하여 서쪽에 황제헌원의 나라가 있었던 것이 되며, 황제헌원의 나라 서쪽에 백제국이 있었던 것이다.

대요는 배달나라의 간지(干支)의 술(術)을 배웠고, 창힐은 배달나라 문자인 부도문(符圖文)을 배웠다. 부도문은 상형문자로서 그림문자를 가리키는데, 배달나라 문자인 녹도문(鹿圖文)을 의미한다.

소호씨(少昊氏)는 소전씨와 함께 고시씨의 후손이다. 즉 소호씨도 웅족(熊族) 출신이다. 소호씨는 배달나라 시대의 서부(西部)의 천자(天子)인 백제(白帝)이며, 소전씨의 후손인 헌원은 중부(中部)의 천자(天子)인 황제(黃帝)가 되었다.

자부선인(紫府仙人)은 서기전2700년대인 치우천왕 시대에 도학(道學)의 대가로서, 천문지리 및 역학(易學)에 밝아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만들고 역법(曆法)을 정리하여 칠성력(七星曆)과 윷놀이를 만들었다.

서기전2697년 이후 10년이상 헌원이 치우천왕에게 도전하던 것을 자부선인이 가르침을 주어 천지인의 도리를 깨닫게 하여, 치우천왕이 삼신(三神)의 대리자이며 헌원 자신은 삼신을 보좌하는 오제(五帝)의 하나임을 깨닫게 함으로써 신하로 되돌아가게 하였으며, 이에 황제헌원은 자부선인으로부터 전수받은 도를 후대에 남겨 중국도교의 시조가 되었던 것이 된다.

청제(靑帝)였던 창힐(蒼詰)은 배달나라 문자의 대가로서 황제헌원에게 문자를 전수하여 주었는데, 창힐의 나라는 산동지역을 포함하는 동쪽의 땅이 되고, 산동지역에서 출발한 나라가 되는 단군조선에서 문자가 한층 더 발전하였으며, 서기전2181년에 상형문자에서 출발한 소리글자인 가림토38자가 정립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 된다.

서기전2599년에 소호국 출신의 금천씨가 황제헌원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소소호금천씨는 황제헌원의 친자(親子)가 아니라 대를 이은 임금인 것이다. 소호금천씨는 서기전2514년에 황제헌원의 친손자인 전욱(顓頊)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서방의 백제국(白帝國)으로 되돌아 갔다.

현재 김씨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소호금천씨는 서기전2600경 당시 백제국의 왕 소호씨(少昊氏)의 아들로서 동방으로 와서 염제신농국의 8대왕 유망에게 협조하고 있었는데, 치우천왕이 염제국을 치자 소호씨가 항복하였고, 치우천왕이 헌원을 칠 때 소호씨를 선봉장으로 삼아 토벌하였던 것이다.

서기전2688년경 헌원이 치우천왕에게 굴복하여 치우천왕으로부터 중부(中部)의 황제(黃帝)로서 정식 천자(天子)로 인정받은 후, 황제헌원이 죽자 항복한 소호씨의 아들이 되는 소호금천씨가 황제헌원의 뒤를 이어 유웅국(有熊國)의 왕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호금천씨를 천자로서 높여서 태상천자(太上天子)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