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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30] 배달나라 연대기 역사 1


배달나라는 서기전3897년 갑자년 해월(亥月) 초삼일(10월 3일)에 태백산(太白山) 아래 신시(神市)를 열어 개천(開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신시(神市) 시대-
 

한웅천왕(桓雄天王)이 서기전3900년경 지위리(智爲利) 한인천제(桓仁天帝)의 홍익인간(弘益人間) 하라는 명을 받고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전수받아, 한국(桓國) 조정에서 멀리 1만리나 떨어진 서남쪽 지방으로 태백산(太白山)을 향해 가서, 텃세와 고집으로 인하여 생긴 호족(虎族)과 웅족(熊族) 사이의 난을 평정하고, 이화세계(理化世界)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열었다.

풍백, 우사, 운사의 삼사(三師)와 저가(豬加), 구가(狗加), 양가(羊加), 우가(牛加), 마가(馬加)의 오가(五加)와 천왕랑(天王郞)의 무리 3,000과 더불어 태백산을 중심으로 한 배달나라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배달나라 개천 때 고시례(高矢禮), 신지(神誌) 혁덕(赫德),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 운사(雲師) 육약비(陸若飛), 치우(治尤), 뇌공(雷公) 등이 한웅천왕을 보좌하였다.

한웅천왕은 인간이 돼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인 웅족을 백성으로 받아들여 웅녀(熊女)를 배필로 삼는 등 관직을 주어 번창하게 하였는데, 고시씨(高矢氏)는 웅족 출신이 된다.

고시례는 농사를 담당하고, 신지는 문자와 명령 담당하고, 풍백은 입법관(立法官)으로서 질병을 관장하고, 우사는 시정관(施政官) 즉 행정관으로서 육축(育畜)을 관장하고, 운사는 사법관(司法官)으로서 선악(善惡)을 관장하며 남녀 혼례법을 정하였다. 또 치우는 병마도적(兵馬盜賊)을 관장하여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였다.

이에, 고시례는 우가(牛加)의 직을 수행하고, 신지는 마가(馬加)의 직책 중 명령을 수행하고, 치우는 마가 및 구가의 직을 수행한 것이다. 오가 중 저가는 풍백에 속하고, 우가와 마가와 구가는 우사에 속하고, 양가는 운사에 속하여, 권력분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입법관 풍백은 지금의 입법부의 수장에 해당하고, 행정관 우사는 행정부의 수장에 해당하고, 사법관 운사는 사법부의 수장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이 분립되어 월권을 하지 않고 한웅천왕을 보좌하여 홍익인세를 실현하였던 것이다.

뇌공(雷公)은 풍백, 우사, 운사 중 우사에 속하면서 운사가 관장하는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즉 선악을 담당과 교육 담당인 양가는 운사에 속하는 한편, 뇌공은 우사에 속하여 실제 선악을 구분하여 상을 주고 처벌하는 직책으로서,행정기관으로 볼 때 형벌(刑罰)을 집행하는 검찰(檢察)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고시, 신지, 치우를 삼선(三仙)으로, 풍백, 우사, 운사, 뇌공을 사령(四靈)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단군조선은 배달나라의 삼사오가 제도를 그대로 계승하였는 바, 삼사 외에 뇌공도 기록되고 있다.

배달나라 개천 후 약400년이 흐른 뒤에 문자로 인하여 도학(道學)과 역학(易學) 등의 학문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즉 서기전3500년경 태우의(太虞儀) 한웅(桓雄)의 묵념청심(黙念淸心), 조식보정(調息保精)의 장생법(長生法)이 있고, 태호복희(太皓伏羲)의 천지인 삼태극의 8괘역(卦易)과 하루 12시(時)의 역(易)과 60갑자가 있으며,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의 무극(無極), 반극(反極), 태극(太極)의 삼태극 체용론(三太極體用論)이 있다.

태호복희는 배달나라 한웅천왕의 아들로서 천군(天君)이며, 우사(雨師)를 지내고 서기전3528년에 산동의 서쪽에 위치한 진(陳) 땅에서 나라를 여니 진제국(震帝國)이라 한다. 즉 고대중국의 역사에서 태호복희의 나라인 진제국은 배달나라의 군국(君國)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태호복희가 배달나라의 우사(雨師)를 지낸 역사적 사실에서 고대중국의 기록은 태호복희를 인두사신(人頭巳身) 등으로 표현하여 용(龍)과 관련시키고 있는데, 비(雨)는 또한 용(龍)에 비유되므로 신화화(神話化) 상징화(象徵化)한 것이 된다.

태호복희를 보좌하여 진제국을 다스린 여와(女媧)는 태호복희의 여동생이며, 서기전3400년경에 발생한 대홍수를 다스렸다. 당시 대대적인 홍수로 인하여 부주산(不周山)이 무너지자 여와는 산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기둥을 세워 지탱하도록 하였는데, 홍수가 쏟아지는 하늘의 구멍을 메웠다 하여 여와보천(女媧補天)이라 부른다.

또 여와는 신통하여 진흙으로 사람 모양을 빚어 일주일 만에 기(氣)를 불어 넣어 살려서 전쟁에 쓰니 적들이 감히 덤비지 못하였다라고도 전한다. 이후 여와는 진흙을 튀기어 황토인(黃土人)을 불어나게 하였다고 기록되는데, 이는 혼인법을 제정한 것과 관련된다. 여와가 불어나게 한 황토인들이 후대의 황제헌원의 나라의 백성들이 되었던 것이 된다.

이러한 여와의 홍수역사와 황토인 창조 관련된 역사는 서방으로 전파되어 소위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여호와의 인간창조와 노아홍수의 역사와 관련되어 지는 것이 된다.서기전3400년경에 발생한 동방의 여와홍수는 땅을 크게 부수는 홍수이며, 서방 수메르지역의 노아홍수는 연대기적으로 서기전2348년에 발생하여 사람을 많이 죽게 한 홍수였던 것이 된다.

태호복희의 나라는 서기전3528년부터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가 나라를 접수한 서기전3218년까지 16대에 걸쳐 310년간의 역사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