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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29] 배달나라 시대의 제도문화 7


배달나라 시대에는 문명생활(文明生活)을 영위하였다. 종교, 철학, 천문지리, 역법, 문자, 학문, 농사, 의약 등 외에도 경제적, 군사적, 사회적 문명생활을 하였던 것이 된다.
 

12. 기타 문명생활
 

배달나라는 천왕(天王) 아래 중앙의 삼사오가(三師五加)와 지방의 기본 5부(部)와 9족(族)으로 형성된 나라였으며, 12자치 제후의 천자국(天子國)을 둔, 강력한 군사력, 정치력을 바탕으로 한 나라였다.

천왕이 머무는 곳에 궁실(宮室)을 건축하고,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으로 하여금 사람이 살 곳을 만들어 거주하는 법을 가르치게 하였으며. 또 소, 말, 개, 돼지, 독수리, 호랑이 등을 길들여 목축을 하고 가축으로 기르는 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특히 소, 말, 개, 돼지는 오가(五加) 제도에서 보듯이 이미 가축화 된 역사가 오래였음을 알 수 있다.

한웅천왕은 배(舟)를 만들고 수레(車)를 만들어 타고 다니며 사해제족(四海諸族)을 방문하였으며, 사냥을 하거나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황제헌원이 배와 수레를 만들었다라고 기록되는 것은, 배달나라에서 시행하던 것을 본딴 것을 고대중국 자체의 역사적 입장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것처럼 적은 것이 된다.

배달나라 초기에 고시씨(高矢氏)는 농사짓는 법과 돌을 부딪쳐 불을 일으키는 법과 음식을 익혀 먹는 법, 화식(火食)을 가르쳤다. 이에 따라 후대에 고시씨를 기리어 고시례(高矢禮)가 생겼다. 고시례는 고시씨에게 예(禮)를 올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농사일을 볼 때 음식을 먹기 전에 산천에 음식을 흩뿌리며 ‘고시례“하며 축원(祝願)하는 것이다.

운사(雲師) 육약비(陸若飛)는 혼인(婚姻)하는 예법(禮法)을 만들어 시행하였으며 폐물로는 짐승가죽으로 하였다. 짐승가죽은 옷감이기도 하고 자릿감이기도 하다.
배달나라 시대에 짐승가죽 외에 이미 옷감을 짜는 법과 그물을 짜서 물고기를 잡는 법이 행해졌다.

태호복희가 시행한 혼인법과 그물을 만들어 새와 물고기를 잡는 법은 곧 배달나라 의 것을 그대로 시행한 것이 된다.

또 염제신농이 시행한 농기구 만드는 법과 농사짓는 법과 시장제도 또한 배달나라의 것을 그대로 시행한 것이 된다.

치우(治尤)는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였다. 특히 치우천왕(蚩尤天王)은 구야(九冶)를 만들어 구리와 철을 채취하여 제련하고 단련함으로써 활, 칼, 창, 갑옷, 투구 등을 제작하였으며, 돌을 날리는 비석박격기(飛石迫擊機)도 만들어 전쟁에 사용하였다.

치우천왕과 동시대 인물인 유웅국(有熊國)의 왕이던 황제헌원(黃帝軒轅)은 치우천왕과 전쟁하면서 연전연패하자 지남거(指南車)를 만들어 전쟁 중에 방향을 잃지 않고 도망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황제헌원이 치우천왕에게 혼줄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배달나라 수도인 신시(神市)는 신(神)들의 도시로서 종교적 중심지이기도 하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회지(都會地)로서 시장터가 있던 곳이다. 시장에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대외적으로는 무역(貿易)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배달나라는 사가동정(四家同井) 즉 4집이 우물 하나를 공용하는 제도가 있었으며 세금을 1/20로 하였다. 사가동정 제도는 단군조선의 사가일구일승(四家一區一乘) 제도와 상통하며, 세율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 된다.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편발(編髮)이 시행되었다. 편발은 머리카락을 땋는 것을 가리키는데, 단군조선 시대에도 그 초기가 되는 서기전2238년부터 편발이 시행되었다.


이상으로 배달나라 시대는 분명한 인간문명 사회였으며, 그 제도문화의 전통은 멀리는 마고성(麻姑城) 시대부터 내려온 것이기도 하고, 이전 시대인 한국(桓國) 시대의 것을 답습한 제도도 있으며, 특히 농사, 역법(曆法), 의약(醫藥), 혼인법, 군사, 세법 등의 제도는 경제적, 과학적, 군사적으로 한층 발전되거나 획기적인 것이 되고, 문자활용으로 인하여 학문이 융성하였던 시대가 된다.

이로써 한국(桓國) 시대에 구전(口傳)이나 배달나라의 문자와는 다른 방법으로 전해지던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가르침이 배달나라 시대에 녹서(鹿書) 등의 상형문자로 기록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각 81자, 366자, 366사(事)로 변함없이 전해진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