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족과 웅족의 평정(平正)
서기전3897년 갑자년 10월 3일 태백산 아래에 신시(神市)를 수도로 삼고 배달나라를 연 한웅천왕(桓雄天王)은, 호족과 웅족에게 짐승이 아닌 진정한 인간(人間)으로서 살도록 기회를 주었다. 즉 무력(武力)으로 진압하기 이전에 가르침을 내렸던 것이다.
한웅천왕은 호족과 웅족의 추장(酋長)에게 하늘과 땅과 인간만물이 원래 하나에서 나왔음을 알게 하고, 인간존중과 만물평등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철학을 담고 있는,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 등 천부(天符)의 가르침을 주어 따르도록 인도하였다.
그런데, 웅족의 추장 웅녀(熊女)는 한웅천왕의 가르침을 받들어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받아 사악한 마음을 비우고 인간본성(人間本性)을 깨닫기 위하여 정성껏 수도(修道)함으로써 21일만에 인간으로서의 도리(道理)를 깨달았으나, 호족의 추장은 한웅천왕의 가르침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깨닫지도 못하여 결국 외면함으로써 인간본성을 망각한 채 진정한 인간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였던 것이다.
이에 한웅천왕은 웅족을 백성으로 받아들이고 특히 웅녀(熊女)를 배필로 삼았으며, 웅족 출신들에게 관직을 주는 등 함으로써 번창하게 하였으나, 반면에 호족은 배달나라 중심지에서 사방으로 추방당하게 되었다. 이후 웅족에서 웅(熊), 고(高), 여(黎), 강(姜), 공손(公孫), 희(姬) 등등의 성씨들이 나와 배달나라와 단군조선 시대에 걸쳐 명문족(名門族)이 되었다.
이리하여, 한웅천왕은 호족(虎族)과 웅족(熊族)의 난(亂)을 한편으로는 가르침으로 한편으로는 추방(追放)으로써 다스려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이후 호족은 서기전2698년경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출현하기까지 약 1,100년간은 역사상에 악역(惡役)으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추방은 형벌의 하나이다. 한웅천왕은 호족이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므로, 배달나라 중심지에서 밖으로 추방하였던 것이다. 즉 웅족과 전쟁을 벌였던 호족은 형벌로서 집단으로 추방당한 것이 된다.
당시 배달나라 중심지는 황하 중상류지역의 태백산이다. 지금의 서안(西安) 부근의 태백산이 서기전3897년에 시작된 배달나라의 중심이지며, 서기전2706년경에 제14대 치우천왕(蚩尤天王)이 산동(山東) 지역으로 수도를 옮기어 청구(靑邱)라 불리는 것이다.
한웅천왕이 호족을 집단으로 사방으로 추방할 수 있었던 것은 정예부대(精銳部隊)라 할 수 있는 천왕랑(天王郞)의 무리 3,000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1당 100의 무예(武藝)를 지닌 천왕랑이 호족의 무리를 배달나라 중심지에서 멀리 추방하여 더 이상 웅족과 싸우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며, 배달나라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차단하였던 것이 된다.
2.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위한 제도 실현
한웅천왕은 서기전3923년 무술년(戊戌年)에 탄생하여 어릴 적엔 하늘나라인 한국(桓國)의 천왕랑(天王郞)으로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등 천부(天符)의 천웅도(天雄道)를 닦았다.
20세경에 이르러 서자부(庶子部)의 대인(大人)으로 봉해졌다가, 호족과 웅족의 난으로 인하여 지위리 한인(桓因)으로부터 홍익인간 세상을 만들도록 명을 받아 천왕(天王)으로 봉해져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전수받고서, 1만리 길을 떠나 태백산에 도착함으로써 하늘나라와 땅이 통하게 하는 다스림을 펴 개천(開天)을 하였던 것이다.
이어 호족과 웅족의 난을 진압함으로써 서기전3897년 27세에 배달나라 시조(始祖) 천왕(天王)으로 즉위하여 홍익인간 세상을 본격적으로 실현하게 되었다.
한웅천왕은 한국시대의 천왕랑(天王郞) 제도와 삼사오가(三師五加)의 제도를 그대로 따랐다. 천왕랑은 핵랑(核郞)이라고도 한다.
배달나라 시대에 문자(文字), 역법(曆法), 의약(醫藥), 천문지리(天文地理) 등의 학문 및 문명생활과 관련된 각종의 제도가 실현되었으며, 율법(律法)이 제정되어 환부(鰥夫) 제도가 실행되었고, 혼례법이 제정되는 등 지상낙원의 홍익인세(弘益人世)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즉, 한웅천왕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다스리는 개천(開天)에서 나아가, 사람들을 진정한 인간으로 가르쳐 홍익인간 세상의 구성원으로 제도하여 인간세상을 구함으로써 개인(開人)하였으며, 땅에 길을 내어 개척하고 산(山)을 다스려 개지(開地)하고 만물을 구제하고 번성케 함으로써 개물(開物)하였는 바, 배달나라 시대에 천왕을 비롯한 삼사오가(三師五加)와 참전(參佺)하는 무리들이 지혜와 삶을 함께 닦음으로써 세상의 일들이 능히 개화(開化)되었던 것이다.
'歷史 > 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익인간 7만년 역사-24] 배달나라 시대의 제도문화(2) (0) | 2013.03.02 |
---|---|
[홍익인간 7만년 역사-23] 배달나라 시대의 제도문화 1 (0) | 2013.03.02 |
[홍익인간 7만년 역사-21] 한웅천황의 개천 (0) | 2013.02.27 |
[홍익인간 7만년 역사-20] 한국시대 말기의 혼란과 한웅의 출현 (0) | 2013.02.27 |
[홍익인간 7만년 역사-19] 한국시대의 문화제도 6 (0) | 2013.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