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족과 웅족의 전쟁
서기전4000년경에 이르러 홍익인간의 시대가 호족과 웅족의 전쟁으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다.
파미르고원이 서기전10000년경에 오미(五味)의 난(亂)으로 실낙원(失樂園)이 시작되어, 서기전8000년경에 파미르고원에서 먼저 동쪽으로 나가 정착하였던 지소씨(支巢氏)의 무리는, 서안(西安) 부근을 비롯한 황하(黃河) 상류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사막지대에 정착하여 살았다.
이들 지소씨족의 무리는 서기전7197년경에 파미르고원을 떠나 그들의 정착지역으로 이동해 오던 황궁씨(黃穹氏)의 일부 무리들에게 텃세를 부려 배척하였고 심지어 쫓아가서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후 약3,000년이 더 흘러 한국(桓國) 말기가 되면서 홍익인간 세상이 지소씨 무리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하여 혼란기에 접어 들었던 것이다. 즉 그동안 서로 침범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유지하던 지소씨의 무리와 황궁씨의 일부 무리가 황하 상류지역의 땅을 놓고 다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지소씨의 무리는 파미르고원에서 서쪽으로 분거하였던 백소씨(白巢氏)의 일파이며, 파미르고원의 백인종이 되는 백족(白族)으로서 황하 상류지역의 사막지대를 중심으로 정착한 무리이고, 범겨레 즉 호족(虎族)이라 불리는 족속이다.
황궁씨족(黃穹氏族)은 황인종이 되는 황족(黃族)이며, 천산산맥으로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 퍼져 살던 무리로, 그 일부가 황하 상류지역으로 이동하여 정착하여 살면서 곰겨레 즉 웅족(熊族)이라 불리는 족속이 되었다.
호족은 그 생김새가 백인종과 같으며, 눈동자가 푸르거나 노란색의 인종으로, 성질이 난폭하고 이기적이며 전쟁을 즐기는 족속이다. 호족은 한웅(桓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추방당하였고, 후대에는 황제헌원의 백성이 되어 대대로 호전적인 유전자를 남겼다.
웅족은 그 생김새가 황인종과 같으며, 눈동자는 검거나 갈색의 인종으로, 성질이 미련하고 고집스러워 물러서지 아니하는 족속이다. 웅족은 한웅(桓雄)의 가르침을 따라 배달나라의 백성이 되어 관직을 갖게 되고 번창하여 배달조선의 지배층이 되었다.
한국말기인 서기전4000년경에 이르러 웅족이 황하 상류지역으로 팽창하자, 호족이 텃세를 부리면서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이때 한국(桓國)의 중심지는 지금의 만주지역으로서 흑룡강과 백두산 사이의 땅이어서, 황하 상류지역은 서남쪽으로 저 멀리 떨어진 천하(天下) 즉 지방의 땅이었다.
2. 한웅(桓雄)의 출현
저 멀리 떨어진 지방의 세상이 시끄러워지자, 한국(桓國)의 조정(朝廷)에서는 고민이 생겼다. 내란(內亂)이라면 내란인 호족과 웅족의 전쟁을 진압할 주인공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서기전3900년경 당시 지위리 한인 천제(天帝)의 아들 중의 하나였던 한웅(桓雄)은 어릴 때 천왕랑(天王郞)이 되면서부터 큰 뜻을 품게 되었고, 홍익인간 실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웅족과 호족의 전쟁 소식을 듣고서 더욱더 뜻을 펼칠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한웅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을 모두 익히고 실천하면서 득도(得道)하여 신(神)을 마음대로 부리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실로 한웅은 삼칠일 즉 21일만에 도(道)를 얻어 신(神)을 마음대로 부렸다고 기록된다. 한편, 석가모니는 49일만에 항마(降魔)하였으며, 예수는 40일만에 항마하였다라고 기록된다.
한국의 7대 지위리(智爲利) 한인(桓仁) 천제(天帝)가 누구를 보낼까 하며 고심하던 끝에, 꿈에 삼신(三神)이 나타나,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 보라,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 할 수 있도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임금은 백성들의 마음을 살펴서 마땅히 어진 사람을 골라 보내어, 인간세상을 구하게 하고 다스리게 하라” 하였다.
이에, 지위리 한인은 삼사오가(三師五加)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의견을 물으니, 모두가 “서자부(庶子部) 대인(大人)인 한웅(桓雄)이 있어 용맹과 어진 지혜를 갖추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 세상을 바꿀 큰 뜻을 지녔으니, 그를 태백산(太白山)으로 보내어 다스리게 함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하며, 한웅을 적극 천거(薦擧)하였다.
한웅은 지위리 한인 천제(天帝)의 아들로서 어릴 적에는 천왕랑(天王郞)이 되어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도(道)를 닦으며 심신을 수련하였으며, 커서는 서자부(庶子部)라는 땅의 대인(大人)으로 봉해져 다스리고 있었다.
대인(大人)은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 등 일반의 제후(諸侯)보다는 한 단계 낮은 직책으로서, 주나라 춘추시대에 비견하면 대부(大夫)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 서기전1622년에 15대 대음(代音) 단군이 아우 대심(代心)을 남선비(南鮮卑)의 대인(大人)으로 봉한 사실이 있기도 하다.
한국시대는 화백제도가 실시되던 나라였던 바, 오가들이 모두 한웅을 천거하였으므로, 한웅이 곧 삼위산과 태백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파견되어 그곳을 다스리는 책임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지위리 한인은 서자부 대인이던 한웅(桓雄)을 불러, “사람과 물건이 모두 갖추어졌도다, 그대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태백(太白)으로 무리 3,000을 이끌고 가서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우고, 하늘님(天神)께 제사지내는 것을 주관하며, 세상을 잘 다스려 만세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라고 하였다.
이에, 지위리 한인은 한웅에게 천부인(天符印)이 새겨진 거울, 방울과 북, 칼 등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전수(傳授)하면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권한과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하여, 천하(天下) 세상의 호족과 웅족의 난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한웅은 천왕(天王)이 되었으니, 천왕은 천권(天權) 즉 왕권(王權)을 행사하는 권한을 가진다. 왕권이란 대표적으로 군사(軍師)를 부리는 권한이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권한은 하늘나라, 천국(天國) 즉 천상(天上)의 나라의 왕이 되는 천제(天帝), 천왕(天王), 천군(天君)만이 가지며, 천하(天下)의 왕인 천자(天子)는 원칙적으로 하늘에 제사하는 권한을 지니지 못하고 천상의 임금의 명령을 받아 제사를 올릴 뿐이다.
여기서 무리 3,000은 그냥 일반 백성이 아니라 천왕랑(天王郞)의 무리로서, 군사로 치면 정예부대(精銳部隊)가 되는 셈이다. 이들은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익히고 심신을 수련하는 무리로서, 특히 전계(佺戒)를 실천함으로써 직접 백성들을 계도(啓導)하고 구제(救濟)하여 홍익인간 세상을 만드는 일선의 실천자들이다.
이에, 서기전3897년 갑자년에 한웅(桓雄)은 지위리(智爲利) 한인(桓因) 천제(天帝)의 명(命)을 받들어 천왕(天王)이 되어 삼사오가(三師五加)와 천왕랑(天王郞)의 무리 3,000을 이끌고, 저 멀리 떨어진 황하 상류지역의 태백산(太白山)으로 향하였던 것이다.
이때 반고(盤固)라는 자가 지위리 한인 천제에게 청하여 땅을 나누어 주어 살기를 바라므로 지위리 한인 천제가 허락하니, 반고는 10간(干) 12지(支)의 신장(神將)들과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 등과 함께 삼위산(三危山)으로 가서 견족(畎族)의 가한(可汗, 汗, 干) 즉 천자(天子)가 되었다. 천자(天子)는 천제(天帝)나 천왕(天王)이 봉(封)하는 자작(子爵)으로서 천국(天國)의 제후(諸侯)이다.
이로써 한웅은 천왕(天王)이 되어 한국(桓國)을 계승하여 9족 모두를 다스리는 배달나라 본국을 다스리게 되었고, 반고는 천자(天子)가 되어 배달나라의 9족의 하나인 견족(畎族)의 나라를 맡아 다스리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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