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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7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31


서기전2238년 계묘년에 부루 천왕이 조서(詔書)를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땋는 편발(編髮)을 하도록 하고, 푸른 옷(靑衣)를 입도록 하였으며, 곡식의 양을 재는 말(斗)과 저울(衡)과 측량기구를 표준에 맞추게 하였다. 이로써 시장에서의 가격이 다르지 않게 되었고 백성들이 서로 속이지 않아 두루 편하게 되었다.

서기전2231년 경술년 4월에 구정(邱井)을 나누어 전결(田結)로 삼아 백성들로 하여금 사사로운 이익이 없도록 하였다. 땅을 우물(井) 모양으로 나눈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한 것이 된다. 8방(方)의 밭은 각 마을 단위로 공동생산하고, 중앙의 밭은 8방의 마을이 함께 공동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전2229년 임자년에 신지(神誌) 귀기(貴己)가 칠회력(七回曆)과 구정도(邱井圖)를 만들어 바쳤다.

신지는 배달나라와 단군조선 시대에 문서담당 벼슬 명칭으로 신라나 고려시대의 한림(翰林)에 해당한다. 배달나라 초기에 신지 혁덕(赫德)은 상형문자가 되는 녹서(鹿書)를 만들었고, 단군조선 시대인 서기전2049년에 신지 발리(發理)는 서효사(誓效詞)를 짓기도 하였다.

칠회력은 배달나라의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과 같은 것으로서, 일(日), 월(月),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의 칠성(七星)을 기본으로 한 달력이 된다. 칠회력은 기본 7요일(燿日)의 1주일(週日) 달력인 것이며, 다시 28수(宿)의 별자리와 조합하여 1기(期)의 달력(月曆)이 되고, 13기(期) 52주(週) 365일, 366일의 1년 달력이 된다.

구정도(邱井圖)는 밭을 나눈 밭문서로서 구(區), 정(井), 무(畝), 보(步) 등으로 정한 것이 된다. 6척사방(六尺四方)을 보(步)라 하는데, 즉 1보는 6자(尺) 곱하기 6자(尺)로서 넓이 36자(尺)가 되며 둘레로는 24자(尺)가 되고, 1평(坪)에 해당하며, 지금의 단위로는 약 3.3평방미터가 된다. 1무(畝)는 100보(步) 즉 100평(坪)이며, 1정은 900무(畝)가 되고 1구(區)는 16정(井)이 된다. 4가(家) 1구(區)이니 동서남북의 4개의 마을이 16정(井)의 밭을 맡은 것이 되어 1개의 마을이 각 4정(井)의 밭을 경작한 것이 된다.

서기전2229년 가을 10월에는 마한(馬韓) 불여래(弗如來)가 부루 천왕의 명을 받아 마한 땅의 백성들에게 칠회력을 나누어 주었다. 

서기전2228년 계축년 봄 3월에 마한 불여래가 마한 땅의 수도인 백아강(白阿岡)에 버들나무(柳)를 심고 도정(都亭)을 지었다. 도정(都亭)은 수도(首都) 관할 내에 지은 큰 정자를 의미한다.

서기전2225년 병진년에 마한 불여래가 남산(南山)에 삼일신고(三一神誥)의 비(碑)를세웠다. 여기서 남산은 마한 땅의 수도인 백아강의 남쪽에 있는 산을 가리킨다. 백아강은 지금의 대동강 평양이다.

삼일신고는 천부경(天符經)과 참전계경(參佺戒經)과 더불어 한국(桓國) 시대에 이미 정립되었던 천부(天符)의 가르침인 천웅도(天雄道)의 종교(宗敎) 경전이다. 천웅도는 한국(桓國)에서 배달나라에 전수된 신선도(神仙道)로서, 한웅천왕이 한국에서 가져와 수립한 심신수련(心身修練)의 도(道)가 된다.


[재차 반역한 순(舜)을 제거하다]


서기전2343년생으로서 20세이던 서기전2324년에 환부(鰥夫)의 직을 수행하며, 단군조선의 사자(使者)였던 아버지 유호씨(有戶氏)를 따라 반역자였던 요(堯)를 토벌하러 갔다가, 야망 때문에 불효(不孝)와 불충(不忠)을 저질렀던 순(舜)은, 서기전2294년에 당(唐)나라 천자(天子) 요임금의 섭정(攝政)이 되었고, 서기전2284년에 요임금을 유폐(幽閉)시키고 천자 자리를 찬탈(簒奪)하였다.

환부(鰥夫)는 세상의 일을 근심하여 잠을 자지 않고 보살피는 직책으로서, 배달나라 시대에 무여율법(無餘律法) 4조를 조절(調節)하던 직책이다.

서기전2288년에 발생한 요순시대의 9년 대홍수를 당하여, 곤(鯤)이 치수를 맡았다가 성공하지 못하여 서기전2280년에 순(舜) 임금이 곤을 우산(羽山)에서 처형하고, 곤의 아들 우(禹)에게 치수를 맡겼고, 서기전2267년에 사공(司空) 우(禹)의 간청으로 단군조선에 치수를 요청하여 이에 우(禹)가 단군조선의 사자(使者)였던 진한(眞韓) 태자부루에게서 도산회의(塗山會議)에서 치수법을 전수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기전2267년부터 서기전2247년까지 20년간 단군조선의 진정한 천자(天子)로서 충성을 다하던 순(舜)이 반역하여,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던 남국(藍國)의 인근에 다시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를 함부로 설치하였던 것이고, 이에 따라 서기전2240년에 제2대 천왕(天王)이 된 태자부루(太子扶婁)는 즉위하자마자 순(舜)이 임의로 설치한 유주와 영주를 정벌하여 폐하고 단군조선 영역에 편입시키고서 순(舜)을 제거하도록 명을 내렸던 것이다.

이에 따라 단군조선의 사자(使者)로서 중원(中原) 땅을 감시(監視)하던 유호씨(有戶氏)가 부루 천왕의 명을 받아 친자식이지만 반역(反逆)의 길을 가던 순(舜)을 제거하도록 작은아들 유상(有象)과 치수(治水)에 공을 세워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단군조선의 후원을 얻고 있던 우(禹)에게 순(舜)을 협공(協攻)하도록 하였으며, 이에 순(舜)은 남쪽의 창오(蒼梧)의 들로 피하던 중 우(禹)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였던 것이며, 이때 순(舜)의 두 아내도 강물에 투신 자결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우(禹)는 아버지 곤(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였다라고 기록되기도 한다.

중원(中原) 땅에서 황제헌원(黃帝軒轅), 요(堯), 순(舜)의 3차례에 걸친 반역(反逆)과 굴복(屈服)의 역사는 지나가고, 서기전2224년 순(舜)이 제거 된 이후에 중원 땅은 또다시 반역(反逆)이 시도되어 소위 중국역사상 첫 왕조(王朝)가 되는 하(夏)라는 나라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