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2239년 임인년(壬寅年)에 부루 천왕이 소련과 대련에게 다스림의 도(道)를 물었다.
소련과 대련은 상(喪)을 잘 치루었는데, 사흘 동안 게을리 하지 않았고, 석달 동안 느슨하지 않았으며, 1년 동안 슬퍼하였고, 3년 동안 근심에 젖어 있었다. 이때부터 풍속이 5개월 상을 치르던 것을 오래 할 수록 영광스럽게 여겼다. 즉 이때부터 부모상을 3년상으로 치른 것이 되는데, 송(宋)나라 때 주자(朱子)에 의하여 부친상(父親喪)은 만 2년인 3년상을, 모친상(母親喪)은 만 1년의 상(喪)을 모시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의 효(孝)]
소련과 대련의 효를 공자(孔子)도 칭송하였는 바, 예기(禮記) 잡기하(雜記下) 편에서 “소련과 대련은 상을 잘 치렀다(少連大連善居喪)”라고 적고 있으며, 그 주해(註解)에서는 “사흘 동안 게을리 하지 않았고, 석달 동안 느슨하지 않았으며, 1년 동안 슬퍼하였고, 3년 동안 근심에 젖어 있었으며, 동이(東夷)의 아들이다(三日不怠 三月不懈 朞年悲哀 三年憂 東夷之子也)”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예기(禮記)는 하은주(夏殷周) 3대에 걸쳐 행해지던 예법(禮法)을 정리한 기록인데,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고대중국이 예(禮)와 도(道)를 잃었을 때 그 예(禮)와 도(道)를 사이(四夷)에서 구하였다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볼 때, 하은주의 예법은 곧 단군조선의 예법을 본딴 것이 되는 것이다. 사이(四夷)는 동서남북의 이족을 가리키는데, 곧 단군조선의 9족 중에서 고대중국의 주위가 되는 동서남북 사방에 위치한 제후국들이 된다.
즉, 동쪽에는 동이(東夷), 남쪽에는 적이(赤夷), 서쪽에는 서이(西夷)인 백이(白夷), 북쪽에는 북이(北夷)가 되는데, 동이는 단군조선(檀君朝鮮) 본국(本國)과 번한(番韓) 관경에 속하던 산동(山東) 및 회대(淮岱) 지역의 이족(夷族)이 되고, 적이는 남만(南蠻)으로 백이는 서융(西戎)으로 북이는 북적(北狄)으로 불렀는데, 동이 외는 모두 격하시킨 용어가 된다.
단군조선은 원래 구족(九族)의 나라로서 당우하은주(唐虞夏殷周)는 단군조선의 구족을 구이(九夷)라고 불렀는데, 춘추전국(春秋戰國) 특히 전국시대에 단군조선 구족(九族) 중에서 동쪽이 되는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의 삼한(三韓)과 고대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회대(淮岱) 및 산동(山東) 지역의 단군조선 제후국들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것이다.
주(周)나라는 원래 서이(西夷) 출신의 나라인데, 은(殷)나라 시대 서방의 제후국이던 주(周)나라가 은(殷)나라를 멸하고 중원(中原)을 차지하면서 춘추(春秋) 시대에까지 단군조선을 구이(九夷)의 나라로 부르다가, 전국(戰國) 시대 이후 스스로 중화(中華)라 격상(格上)시키면서, 단군조선 본국(本國)인 삼한(三韓)을 동이(東夷)라고 부르고 그 외 서방, 남방, 북방에 위치한 단군조선의 천자국(天子國)에 해당하는 제후국을 통틀어 각 서융, 남만, 북적이라 비하(卑下)한 명칭을 쓴 것이 된다.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동이(東夷)라는 명칭은 서기전1198년경의 은(殷)나라 백작(伯爵)의 제후국이던 주(周) 나라의 역사기록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이는 서기전403년 이후의 주나라 전국(戰國) 시대에 역사를 재기록할 때, 단군조선의 9족(族)인 구이(九夷)라는 명칭 대신에 단군조선의 삼한관경(三韓管境)으로서 본국(本國)이 되는 축소된 의미의 동이(東夷)라는 명칭을 소급시켜 적은 것이 된다.
대련(大連)은 지금의 백두산이 되는 태백산(太白山)에 세워진 사선각(四仙閣)에 모셔졌던 사선(四仙) 중의 한 분이시다.
태백산 사선각의 사선(四仙)은, 배달나라와 단군조선 시대에 명성이 자자하던 선인으로서 선인(仙人) 중의 선인(仙人)을 가리키는데, 서기전3500년경의 발귀리(發貴理) 선인과 서기전2700년경의 자부선인(紫府仙人)과, 서기전2240년경의 대련(大連) 선인과 서기전2180년경의 을보륵(乙普勒) 선인이다.
발귀리 선인은 하도(河圖)와 8괘역(卦易)의 주인공인 태호복희(太皞伏羲)와 동문수학(同門受學)한 분으로서, 서기전3897년 갑자년에 배달나라를 개천(開天)하신 한웅천왕(桓雄天王)의 원각(圓覺)을 찬양하면서, 일체삼용(一體三用)인 원(圓), 방(方), 각(角)의 무극(無極), 반극(反極), 태극(太極)의 원리를 시(詩)로 읊었다.
자부선인은 천하(天下)의 도(道)를 어지럽히며 치우천왕에게 100여회의 전쟁으로 도전하였던 황제헌원(黃帝軒轅)에게 삼황내문경(三皇內門經)의 가르침을 전수(傳授)하여, 황제헌원으로 하여금 도(道)를 깨닫게 함으로써, 황제헌원은 치우천왕에게 진정한 신하로서 굴복하여 오방(五方) 천자(天子)의 하나인 황제(黃帝)로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다. 자부선인은 발귀리 선인의 후손이라 전하며, 광성자(光成子), 광명왕(光明王)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련(大連)은 일명 묘전랑(妙佺郞)이라고도 불리는데, 형제간인 소련(少連)과 더불어 효도에 밝았으며, 하은주(夏殷周)의 3년상의 전통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고대중국의 요순(堯舜)에서 시작되는 3년상 기록은 진실이 아니며, 후대에 가필한 것이 되는데,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유폐(幽閉)시키고 천자(天子) 자리를 찬탈(簒奪)하였는데 어찌 3년상이 있을 것이며, 하우(夏禹)가 또한 순(舜)임금을 죽였는데 어찌 3년상이 있을 것인가? 고대중국의 초기에 기록된 3년상은 후대 주(周) 나라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이후에 중화주의(中華主義) 역사가들에 의하여 미화(美化)된 것임이 분명한 것이다.
을보륵 선인은 삼랑(三郞)의 직책을 수행하였는데, 삼랑은 삼신시종랑(三神侍從郞)의 준말로서 삼신(三神)을 모시고 제사(祭祀)를 지내는 벼슬이다. 을보륵 선인은 서기전2182년에 단군조선 제3대 가륵(嘉勒) 천왕(天王)에게 신왕종전(神王倧佺)의 도(道)를 설파하였으며, 서기전2181년에는 가림토(加臨土)라 불리는 바른소리 글자인 정음(正音) 38자를 정리하였다.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은 공자(孔子)보다 약 1700년 이전에 사셨던 신선불사예의(神仙不死禮義)의 나라였던 단군조선의 중신(重臣)으로서 당시 효(孝)의 표상(表象)이 되었으며, 그 상례(喪禮) 등의 예법은 고대중국의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의 표본이 되어 지금까지 전승되어 온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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