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네스 펠트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귤화위지·橘化爲枳). 강남의 귤을 기후 풍토가 다른 강북에 옮겨 심었더니 맛없는 탱자가 됐다는 고사성어다. 같은 사물이라도 환경과 조건이 다르면 그 속성까지 변하기 마련이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20대 못지않은 외모로 ‘방부제 미모’라는 별명을 얻은 배우 기네스 펠트로. 한국 등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남다르다. 한국식 비빔밥과 김치를 즐겨먹고 집을 한글 문양으로 장식하고 동양식 화장실까지 만들었다. 게다가 부항과 침술을 권할 만큼 한의학 마니아다.
그러나 그의 남다른 ‘부항’ 애호는 ‘귤화위지’를 떠오르게 만든다. 그는 등 전체에 부항을 시술한 후 생긴 여러 멍자국들이 그대로 노출된 옷차림으로 구설에 올랐다. 한국의 어느 사우나에서 묻지마 시술이라도 받은 듯 보였다. 검붉은 부항 자국들 때문에 “심각한 신종 피부병에 걸렸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그러나 출산 후 몸매 관리도 부항 시술로 했다고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는 부항다이어트가 유행했다.
과연 펠트로처럼 온몸에 부항을 하면 살이 쪽쪽 빠질까? 독소가 빠져나가고 신진대사가 촉진되니 지방분해 효과도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기왕이면 전신에 매일 자주 반복하면 효과는 더 좋을까? 물론 부항은 어혈 제거와 혈액순환 촉진 효과가 분명 있다. 타박상의 경우 정확한 부항 시술로 직접 어혈을 제거해주면 훨씬 빠르게 회복된다. 각종 통증이나 근육피로에도 부항은 효과가 좋다. 그러나 부항이나 침술은 그 자체로 주사처럼 약물을 주입하거나 독소를 빼내서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즉 생명체가 외부자극에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자연적 힘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침술이나 부항 자극은 대뇌피질에 가상 위기신호를 전달한다. 민방위 공습 사이렌처럼 인체는 이때부터 신호 발신지에 최우선적으로 신선한 혈액을 공급하게 된다. 이처럼 자연치유력을 자극하는 일종의 위장 충격요법이다. 실제 독소를 부항으로 빼내서 효과가 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부항이 마치 지방흡입술이라도 되는 양 착각한다. 부항의 체지방 분해 효과는 미미하다. 수백번 부항을 하느니 차라리 동네 한 바퀴 뛰는 게 더 낫다. 자신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노력보다 수동적 시술로 해결하려는 나태함이 착시의 원인이다. 펠트로의 살빼기도 부항보다는 육류나 설탕, 과일, 밀가루, 유제품 등은 아예 입에 대지 않는 철저한 식습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처럼 과도한 부항은 오히려 문제다. 만약 사이렌을 여기저기서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면 어떨까? 신호도 교란되고 인체는 어느 부분에 우선적으로 기혈을 공급해야 하는지 혼선에 빠진다. 갈수록 자가치유력이 떨어져 근육은 더 딱딱해지고 예전 효과를 얻기 위해 부항 중독이 된다. 결코 다다익선이 아니다.
최근 온갖 복지혜택을 공약했던 정부가 정작 제한된 재원 때문에 뒷감당을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여기저기 부항을 많이 하면 꼭 필요한 곳의 치료효과는 떨어진다. 그럼에도 아픈 곳마다 많이 하면 효과가 더 좋을 거라 착각한다. 적게 해주면 성의 없는 의사로 오해한다. 결국 재원도 신선한 기혈도 모두 자신의 지갑과 몸에서 끌어와 돌려막는다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부항과 침술의 효과는 기구 자체가 아닌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려는 지혜에서 나온다. 살고자 하는 능동성을 자극해 전체 조화를 꾀하는 것이다. 그런데 펠트로의 부항 애호는 이런 지혜는 사라지고 수동적 물량공세라는 지극히 단순한 내용만 남은 듯싶다. 이를 다시 서양문물이라며 받아들이니, 귤이 탱자가 되었다가 역수입되면 무엇이 되는 건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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