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리데이
어느날 느닷없이 누군가 내게 흉기를 겨눈다면? 그리고 내 생명을 담보로 경찰과 대치하며 인질극을 벌인다면? 범죄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런 상황에서 인질들은 어떤 정서를 느낄까.
무섭기도 하고 언뜻 극도의 분노가 치밀 것 같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내 생명을 위협하니 말이다. 그러나 인질극이 길어질수록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을 구하러 온 경찰에겐 적대감을, 인질범들에겐 인간적 호감을 느낀다. 이른바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1973년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서 6일간의 인질극 뒤, 인질들의 상당수가 인질범을 옹호하는 이상 심리반응을 보였다. 이런 현상은 <홀리데이> 등 여러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극단적 위기에서의 생존본능 때문이다. 인질범에 대한 미움과 분노라는 이성적 논리나 감정이야말로 자신의 생존을 가장 위협한다. 살기 위해선 이성은 억압하고 생살여탈권을 쥔 인질범에게 순응해야 한다. 강도나 다를 바 없는데도 ‘인간적이고 참 좋은 사람’이란 착각을 크게 부풀려야 한다. 이를 되뇌다보면 착각과 진심은 어느새 뒤바뀐다.
최근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도 ‘스톡홀름 증후군’을 떠올리게 만든다. 5·16 쿠데타 관련 질문에 장관 후보자들은 “5·16을 평가할 만큼 공부가 안 돼 있다”거나 “답변하기 어려운 입장을 이해해 달라”며 회피했다. 공직자의 생살여탈권을 쥔 이의 역린을 건드릴 순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강박증이나 틱장애 아동들에게도 그대로 관찰된다. 대통령과 고위공직자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도 인질범과 인질처럼 극단적 상하관계가 나타나기 쉽다. “말 안 들으면 다리 밑에 갖다버린다”는 예전 부모들의 으름장은 요즘도 유효하다. 그 공포감은 인질범의 흉기 협박에 비해 결코 덜하지 않다. 여백 대신 조기학습과 스펙이라는 부모가 만들고 싶은 틀 속에서 인질인 아이들은 얌전히 순응해야 한다.
‘호부호형’을 못하는 장관들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 언뜻 인질처럼 보이지만 장관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이고, 그만둬도 돌아갈 곳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도, 부모를 떠나 돌아갈 곳도 없다. 권력자인 부모는 미약한 자신의 생존을 지켜줄 ‘제1 보호자’인 동시에, 자신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라는 모순과 혼란을 감내해야 한다.
분노와 불안은 속으로 억압하고 들켜선 안 된다. 대신, 부모를 포함한 불편한 현실조차 애써 좋은 것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세뇌시켜야 한다. 이런 내적갈등에 대한 신경학적 과잉반응이 틱장애요, 강박증이다.
물론, 상당수 보호자들은 이 같은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학이나 학교선생님 등 주변 환경이나 아이의 성격을 먼저 탓한다.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여기에 의료진도 면죄부를 준다. 틱장애는 아이 뇌신경의 이상반응이라는 시각이다. 즉, 감기처럼 아이 몸의 이상이니 신경안정제로 몸만 치료하면 된다고 여긴다.
왜 멀쩡하게 태어난 아이의 신경에 이상이 생겼을까는 더 이상 캐묻지 않는다. 모든 건 인질인 아이의 신경과 근육의 문제로 합의된다. 결국, 웃음의 근육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신경안정제와 함께 파묻혀갈 것이다.
권불십년. 부모가 가진 권력도 오래가진 못한다. 어려서 소통되지 못한 아이의 내적 분노는 결국 청소년기 즈음 다시 꿈틀거린다. 이 또한 부모들은 사춘기와 성호르몬 탓으로 돌릴 것이다. “왜?”라는 질문을 권력자가 먼저 던지지 못하면, 결국 억압된 불통의 씨앗은 극단적으로 커져갈 수밖에 없다. 언제고 아이들은 마음속에서 쿠데타를 꿈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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