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레날린은 신경자극 전달물질이다. 우리 몸에서 심장박동과 혈관수축을 촉진한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아드레날린을 이용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동일한 용량을 주사한 뒤 A, B방에서 각각 지내게 했다. 대신, 보조실험자를 은연중에 투입시켜 A방에선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등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반면, B방에선 화내거나 문을 쾅 닫는 등 공격적 행동을 했다.
이후 감정평가 설문에서, A그룹은 평소보다 즐겁고 흥분되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반면, B그룹은 화나고 불쾌했다는 답이 훨씬 많았다.
이른바 감정이원이론 실험이다. 이는 인간의 감정이 단순히 신체적 요소나 약물 등 객관적 상황보다 때론 주변 심리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불면증 역시 신체질환이지만 주변 심리환경과 연관성이 매우 높다. “정확히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일 밤부터 불면증이 시작됐다”는 한 40대 여성도 그런 예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떨어져 분한 생각에 잠을 못잤다고 한다. 그 뒤로 한 달 넘게 불면증이 계속됐고 전신피로와 두통까지 동반됐다. 대선 결과 발표 후 일부에서는 “앞으로 5년이 끔찍하다”거나 “차라리 이민 가겠다”는 반응도 많았다. 심지어 저명한 지식인들조차 한반도가 폐허가 되었으며, 나치나 유신 치하로 돌아갔다는 식의 절망감까지 내비쳤다. “개 밥그릇만도 못한 민주주의”라며 격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불면증이나 화병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 분노나 좌절의 정서 역시 강력한 전염력을 지닌다. 마치 B그룹에 속한 참가자처럼 교감신경을 자극해 불면증이 유발된다. 그렇다면 이 환자 역시 대선 결과에 따른 실망감 때문에 줄곧 불면증이 낫지 않았던 것일까. 또 앞으로 5년 내내 불면증에 시달려야 한단 말인가.
소음인인 환자의 마음에서 일으킨 착각이다. 정작 불면증의 원인은 따로 있다. 대선 결과나 민주주의 걱정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자존심의 상처다. 대선 전후를 기점으로 환자의 자존심에 상처가 됐을 요인부터 찾아야 한다. 그는 부잣집 외동딸로 태어나 큰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사업 실패를 반복해 예전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대리점 개업을 준비 중이다. 생활이나 씀씀이도 예전 같지 않다. 환자는 “이번에는 밑바닥 일부터 배운 뒤 제대로 시작할 계획”이라며 “수개월간 다른 대리점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의식 한편에선 ‘내가 누군데, 그런 허드렛일까지…’라는 갈등이 솟구친다. 하자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하지 않으려니 사업 실패가 두려운 진퇴양난이다. 곧 닥쳐올 자존심의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며 미루던 상황이었다. 환자는 “불면증만 아니면 밑바닥부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 불면증은 자존심의 상처라는 더 큰 고통으로부터의 피난처다. 피난처 확보의 심리적 명분을 대선 결과의 실망감에서 찾은 것이다.
잠시 자기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린 대가가 불면증이다.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정작 두려운 것은 대선 결과가 아니라, 당분간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자존심이다.
분노를 표출했던 지식인들은 과연 모두 나라 걱정을 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의 화풀이일까. 때로 이들의 선동적 언행은 강력한 사회적 아드레날린이 된다. 한쪽에선 같은 편이라며 환호하고, 다른쪽에선 죽일 놈처럼 비난한다. 모두 자기중심을 잃고 휘청대는 순간 몸도 마음도 병든다.
좋은 대통령을 뽑는 것 못지않게 좋은 시민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자신과의 소통이 항상 우선이다. 나라 걱정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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