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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멘탈 동의보감

소통 까다로운 태음인 대통령


▲ 박근혜 대통령

태음인은 감각기능이 우월하고, 직관기능이 열등하다. 감각은 과거 경험을 상세히 기억하고, 직관은 새로운 상황에서의 빠른 판단력을 말한다. 태음인은 이미 익숙한 영역의 반복이 재주이고, 대신 낯선 상황에서의 순발력이 떨어진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태음인이다. 지난해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라는 오래된 개그를 대본 읽듯 전달해 썰렁 유머라는 평을 받았다. 소양인이 살을 덧붙여 맛깔나게 좌중을 웃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태음인은 순발력이 떨어지는 걸 자신도 잘 알기에, 위기상황일수록 직관보다는 과거 경험에 의존한다. ‘수첩공주’라는 별명이 생기고, TV토론에서도 애드리브 없이 준비된 원고만 줄줄 읽었다.

빠른 판단을 종용받으면 긴장감이 높아져 숨어버린다. 그는 “수첩을 보고 해도 좋으니 양자토론을 하자”는 야당 측 요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긴급한 현안마저 즉각적 언급을 피하고, 웃고 말거나 원론적 말만 반복한다. 심지어 며칠씩 두문불출한다. 충분히 준비된 말 외에는 하지 않아 촌철살인의 정치인과 불통이란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박 대통령처럼 태음인에게 소통이란 어떤 의미일까. 과거 또는 친숙한 대상으로의 복귀다. 이는 낯선 대상에 대한 경계와 반감에 기반한다. 태음인이 유독 추억을 더듬는 영화나 드라마를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래 함께 경험한 대상에겐 후한 배려와 신뢰를 주지만, 낯선 대상엔 불신의 차가운 시선을 담는다.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역시 옳고 그름보다 과거로의 회귀라는 태음인 소통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음인과 소양인이 뜻만 잘 통하면 금방 호형호제 하며 새로움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소음인은 사고의 논리적 소통, 즉 시시비비를 말과 글로 따져 분명한 결론에 이르는 걸 선호한다. 반면 소양인은 감정 소통이 주다. 서로 즐겁고 유쾌하면 소통이다. 오래 알았거나 신념이 똑같은지는 중요치 않다. 태양인은 ‘나만 따르라’는 식을 소통이라고 여긴다. 이처럼 누구나 소통을 외치지만, 저마다 내리는 소통의 정의가 다르다. 문제는 자기 입장에서 소통을 외친다는 점이다. 소음인에겐 묵묵부답인 박 대통령의 방식이 불통이다. 반면 태음인 시각에선 ‘말로 따지는 게 분열과 갈등’이라는 식이다. 그래서 밀봉인사와 함구령 정치라는 비난에 직면한다.

태음인은 ‘말보다 행동과 실천’ 여부에 초점을 둔다. 한마디로 말을 믿지 않는다. 미래에 어떻게 하겠다는 논리보다, 과거 행적으로 평가한다. 당장 말이 되나 안되나 논리부터 따지길 원하는 소음인은 이런 태음인 방식에 속이 터진다. 반면 태음인은 말로 하는 논리적 소통엔 부정적 정서가 강하다. ’말만 번지르르하다’는 식이다. 전체 인구의 50%가 태음인, 20%가 소음인이다. 다수결이면 태음인 정서에 공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통합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소음인은 논리적 의견일치가 통합이다. 반면 태음인은 비빔밥처럼 그냥 뭉뚱그리는 게 통합이다. 과거사 인식의 입장 표명 요구에도 박 대통령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따지지 말고 비빔밥처럼 그냥 공존하자는 게 태음인식 통합론이다.

이런 시각 차는 모든 대인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부부싸움 뒤 바로 더 대화하자는 소음인과, 일단 덮어두자며 며칠씩 말도 않는 태음인 부부 중 누가 옳은 것일까. 대부분의 갈등은 자기 방식만 옳다고 여기고 자기 관점만 고수하면서 시작된다. 혼자 살아간다면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가정이든 사회든 누군가와 소통해야 한다면, 나와 다른 소통방식의 존재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