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그는 소음인이다. 한 가지를 파고들며 결론에 이르는 사고기능이 우월한 반면, 기분을 배려하고 순간 조화시키는 감정기능은 열등하다.
사상의학에선 이런 쏠림이 심해질수록 ‘내가 옳다!’ ‘내가 최고야!’라는 긍심(矜心)이 강해진다고 본다. 잡스가 꼭 그런 예다. 검은색 터틀넥과 리바이스 청바지 등 그는 옷차림부터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동일했다. 주변의 시선이나 조화보다 자신의 생각에 우선순위를 둔다. 예를 갖추어야 할 장소에도 불쑥 평상복으로 당당히 나타난다면 이는 소음인이다.
잡스는 애초에 터틀넥을 애플사 유니폼으로 입히려 했다. 직원들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됐지만, 자신은 수백벌을 옷장에 두고 입었다고 한다. 잡스는 13살 때 하나님은 없다며 목사와 언쟁을 벌이는가 하면, 23살 때는 여자친구의 임신 소식에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법정소송까지 벌였다. 친자 확인검사 결과도 막무가내로 거부했다.
확실한 결론을 추구하는 기질의 소음인은 긍심이 강해지면 하나의 생각에 꽂혀 유연성이 없어진다. 논리적 태도는 사라지고 말이 안 통하는 고집불통이 된다. 가는 곳마다 파열음을 낸다. 잡스는 빌 게이츠나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 등에 대한 원색적인 독설로도 유명하다. 자신이 생각한 결론과 기준에 맞지 않으면 상대나 세상이 잘못됐다는 식이다. 승용차 번호판을 달지 않은 일화도 유명하다. 실정법 위반임에도 ‘권위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라고 합리화했다. 게다가 “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하지 않을까”라며 오히려 그게 불만이었다고 한다. 한동안 애플 직원들에게는 ‘엘리베이터에서 잡스와 마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었다. 잡스는 마주친 직원에게 대뜸 업무 질문을 하고 대답이 신통치 않으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해고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직원뿐만이 아니다. 최고재무책임자도 한순간에 해고해버렸다.
주변과의 마찰은 숨지기 전까지도 지속됐다. 췌장암에 걸렸지만 자신만의 식이요법을 하느라 수술 시기를 놓쳤다. 혼자만의 원칙 때문이었다. 말조차 겨우 하는 투병 중에도 마스크를 씌우려는 의사와 다툰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새 마스크를 요구한다. 결국 자신이 새로 디자인해 병원 측에 제안까지 했다.
가정에서는 달랐을까. 그의 아내가 “8년 동안 가구 하나를 구입하는 문제로 토론을 벌였다”고 말할 정도다. 잡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는 가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슷한 예가 우리 주변에도 많다는 사실이다. 외도가 발각되자 ‘남자가 그럴 수 있지’라며 그걸 이해 못하는 아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70대 노인, 어린 자식을 학원으로 내몰며 일거수일투족을 개입하면서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고 착각하는 헬리콥터 맘, 자신이 힘들게 벌어서 먹이고 입혔는데 자식이 대학 전공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려 한다며 화내는 아버지는 모두 잡스와 닮아 있다. 이들 주변에선 화병 난 아내와, 틱장애의 초등생, 우울증의 대학생이 가슴을 치고 있다.
만약 잡스와 같은 직장 상사와 함께한다면 우리는 행복할까. 자신이 옳다고 믿는 확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숨통을 옥죄어야 할까. 소음인 자신 또한 뜻대로 안되는 주변을 탓하며 울화가 치밀게 된다. 잡스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도 결코 이런 기질과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라.’ 잡스가 직원들에게 자주 외친 말이다. 그러나 ‘기술’이 아닌 ‘행복’을 위한 진정한 혁신은 남이 아닌 자신에게서 출발해야 한다. 자신의 확신부터 달리 생각해보는 자기성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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