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푼젤
“세상은 너무 무섭고 험하단다. 너 혼자 힘으론 아무것도 못해. 엄마가 너를 더 잘 알아. 제발 엄마 말을 들어. 이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동화 <라푼젤>에서 라푼젤은 18년 동안 깊은 숲속의 높은 탑 안에서만 갇혀 산다. 계단도 출입문도 없고 오직 꼭대기에 작은 창문 하나만 있을 뿐이다. 단 한번도 바깥세상으로 나오지 못했던 라푼젤은 성인이 되자 “저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며 한숨 쉬지만 세상으로 나갈 방법을 모른다.
라푼젤처럼 ‘의존형 성격’은 부모의 품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이내 겁에 질려 고통을 호소한다. “글씨가 안 보여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한 신참 여교사도 그런 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이유 없이 눈물만 나고 불안해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지어 “앞으로 살아갈 게 버거워 짧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울먹인다.
최근 집에서 2시간 거리의 지방으로 교사발령이 났다. 한동안 버스로 출퇴근하다 ‘이참에 독립하자’며 자취를 시작했다. 부모 울타리에서만 맴도느라 서른이 넘도록 이성교제 한번 못했고, 이대로라면 영영 결혼도 못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그런데 막상 자취방에선 잠도 오지 않고 다신 부모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아 밤새 눈물을 흘렸다. 방학 내내 집에 와 있어도 진정되지 않았다. 환자는 ‘의존과 독립’이라는 양극단을 오가며 큰 혼란을 겪었다. 처음엔 편하기만 했던 의존이 어느덧 구속이며 자신의 삶을 녹슬게 함을 자각한 건 좋았다. 그러나 홀로서기 할 마음의 근력도 없이 지금까지의 의존을 한꺼번에 차단하겠다는 과욕이 화를 불렀다.
최근엔 ‘부모님이 밖에서 사고라도 났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라 소스라치게 놀란다. ‘모든 의존을 갑자기 다 포기해야 독립’이란 이분법적 논리 때문이다. 즉, 완전한 독립이란 부모 존재가 사라져야 가능하다는 착각이 만들어낸 강박증이다. 한편 ‘정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홀로 어찌 살아가나’라는 무의식과 죄책감에 다시 괴롭다. 의존하자니 구속이 싫고, 독립하자니 의존할 대상을 몽땅 잃을까 걱정이다.
학부모나 학생 상담이 있는 날 아침엔 몸이 천근만근에 가슴부터 쿵쾅거린다. 내 부모에게 의존할 때 심리적 안정을 찾는데, 역으로 누구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조금도 못 견딘다. 의존을 포기하고 독립을 종용받는 환경이다. 이성교제나 대인관계도 마찬가지다. 누구든 좀 더 긴밀한 관계로 다가올라치면 두려워서 먼저 도망치듯 관계를 정리했다. 그녀는 “내가 책임져야 할 대상들은 모두 두려웠다”고 말했다.
사상의학에서는 부모의 훈육 방식이 서로 달라 7세 미만의 아이가 부모 눈치를 많이 보면 의존형 인격이 형성된다고 본다. 부모에서 배우자와 자식으로 의지처만 평생 바뀐다.
몸은 이미 30대 중반, 그러나 마음은 이제 걸음마부터 시작해야 한다. 치료는 갑자기 깊은 물에 내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얕은 물에서부터 배워나가야 한다. 사소한 것부터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해도 불행한 결과가 없음을 확인해야 한다.
환자는 “부모님은 매우 헌신적인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의 불안에서 비롯된 지나친 헌신이 자식의 홀로서기를 힘겹게 만든다. 헤엄칠 능력을 키워주기보다 물가엔 가지도 말라는 격이다.
공자는 “싹은 났으나 자라지 아니하는 것도 있으며, 자라기는 했으나 열매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의 헌신 이면에 때론 ‘보이지 않는 폭력’이 존재한다. “무서운 세상”이라며 합리화하지만 과보호는 종종 부모의 불안과 자식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이를 자각해야 유전보다 강한 필연의 힘으로 반복될 의존형 인격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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