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우석 감독
이제마는 소음인의 기질로 ‘극정(克整)’을 꼽았다. 같고/다름, 옳고/그름 등 그 결론을 지극히 명쾌하게 정리하려 한다.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답답해서 못 견디고, 결론이 난 것은 좋고/싫음이 분명해 드러내기를 서두른다.
최근 영화 <전설의 주먹>을 연출한 강우석 감독 역시 호불호가 분명한 소음인이다. 총 동원 관객 3843만명으로 한국 흥행 1위 감독인 그는 “영화 볼 때 딴생각이 나면 안된다”며 “더 재밌게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한다. 그래서 “웃다가 죽어도 좋다”며 “인생 최대의 목표도 유머”라고 강조한다.
대신 멜로영화에는 극단적 거부감을 보인다. 총 21편 중 멜로는 한 편도 없다. 심지어 짧은 장면이라도 멜로 요소가 등장하면 자신이 못 견뎌 아예 삭제한다. 이런 성향 때문에 ‘마초’란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럴수록 잘하는 것만 집중하자며 아예 여배우를 자신의 영화에서 빼버렸다. 실제 성격도 다르지 않다. 연애 특유의 애틋한 감정을 못 견뎌, 두 번째 만남에서 바로 청혼했고 결혼식도 두 달 만에 올렸다고 한다.
코믹 장르가 아니면 두통약과 술 힘을 빌려 겨우겨우 촬영한 반면, ‘필’이 꽂힌 영화는 모든 게 속전속결이다. 그는 “뭔가 정해졌는데 빨리 못하면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일례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신문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나리오와 촬영까지 모두 한 달 만에 마치고 개봉했을 정도다. 또 136분짜리 영화를 단 1분 분량만 편집할 정도로 치밀한 구석도 있다. 여기에 직접 제작한 영화만도 전무후무한 190편에 달한다. 그러다보니 자기확신 또한 강하다. 영화 <실미도> 촬영 당시 그는 1000만 관객을 호언장담해 주변을 당황케 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실제 적중했다. 그는 또 시나리오 제목만 딱 보고 자신의 직감대로 거액을 투자해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질로 인한 화려한 성공 이면에 그림자도 존재한다. 영화 <실미도>가 성공하던 해 그의 영화사는 부도 위기에 몰렸다. 그의 직감을 배신한 흥행 참패작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좋고 싫음이 너무 분명한 기질도 불편함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때 ‘영화계 공공의 적’으로 불렸다. 그는 “재미없는 영화가 무슨 영화냐, 그런 영화는 망해도 된다며 말을 함부로 했다”고 후회했다. ‘유머가 최고’라는 자기원칙 때문이다.
그는 아내 전화를 받고 5초 안에 웃음이 안 터지면 바로 끊어버린다. 또 전화 목소리가 조금 우울해도 목소리 톤을 올리라며 상대를 나무란다. 이것 또한 ‘인생은 즐겁게 살자’라는 자기 원칙 때문이다. 촬영기간에는 모든 배우와 제작진들이 매일 저녁 함께 술을 마셔야 한다는 원칙도 있다. 두 번 연속 빠지면 배역 비중을 줄인다. 물론 이 원칙에도 그만의 지론은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9시 뉴스를 봐야 한다며 일찍 들어가버린다. 영화 홍보를 위해 배우가 TV에 출연해선 안된다는 평소 소신도, 자신에겐 예외조항이다.
이 많은 원칙은 누가 정했고 누구를 배려한 것일까. 바로 소음인 자신이 좋아서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 것뿐이다. 주변에선 때론 못마땅해도 참아 줄 때가 많지만 소음인은 잘 모른다.
화병으로 내원한 소음인들 중에도 강한 자기확신과 원칙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지위나 사회적 성취가 클수록 더 심하다. 큰 성취 이면에 때로는 자기세계에 빠져 주변과 마찰이 많아진 까닭이다. 애초에 자신이 좋아서 만든 자기만의 원칙임을 돌아보는 것이 마음을 비우는 비결이다.
소음인의 분노와 우울에는 ‘분별 대신 향기’란 시구가 더없이 좋은 약이다. 내 머릿속에서 시작된 온갖 원칙이나 분별보다, 상대에게서 품어진 향기를 선입견 없이 맡아보는 것이다.
'醫學 > 멘탈 동의보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대 못 가서 생긴 병? 그게 아냐 (0) | 2013.10.22 |
---|---|
소음인은 몰입형…‘외골수’ 많아 (0) | 2013.10.21 |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과잉진단’ (0) | 2013.10.16 |
부항 많이 하면 치료효과 떨어져 (0) | 2013.10.14 |
아이들도 쿠데타를 꿈꾼다 (0) | 2013.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