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7197년경 시작된 사방분거(四方分居)는 약 1,000년에 걸쳐 이루어지고, 서기전6200년경에 이르러 정착이 이루어져, 이후 소위 문명(文明) 시대가 시작되었다. 여기 약 1,000년에 걸치는 시대가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의 장(長)이던 황궁씨가 천산(天山)을 중심으로 다스린 한국(桓國) 시대가 된다.
서기전7197년경 이전에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에서 동북지역인 천산주(天山洲)로 이동하여 천산(天山)을 수도로 삼아 다스린 황궁씨는, 오미(五味)의 난(亂)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서 복본(復本)을 서약하고, 장자(長子)인 유인씨(有因氏)에게는 정사(政事)를 돌보게 하였으며, 차자(次子)와 삼자(三子)에게는 각 사방을 순행(巡行)하게 함으로써 형제족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가르침을 전수하였다.
서기전7197년경부터 서기전6200년경 사이에 정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에서 먼저 동쪽으로 출성하였던 지소씨족(支巢氏族)들이 각지에 흩어져 세력이 만만치 않았는데, 먼저 마고성을 나가는 바람에 황궁씨로부터 원래 하나였음을 알게 하는 증표인 천부(天符)를 전수받지 못하였고, 또한 천부의 의미에 관한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거의 근본을 잃고 성질이 많이 사나워져 새로이 분거해온 사람들을 쫓아내고 심지어 추적하여 해(害)하기도 하였다.
분거한 사람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종주(宗主)가 되는 황궁씨의 사자(使者)가 각 제족(諸族)을 방문하는 것 외는 서로간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언어가 각 지역마다 서서히 그 나름대로 굳어지면서 서로 소통이 잘 안되는 등 언어분화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서기전7197년경과 서기전6200년경 사이에 분거가 이루어진 때, 마고할미는 마고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청소를 하였는데, 이때 청소한 물이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에 크게 흘러 넘쳐 대홍수를 일으켰으며, 이때 서쪽의 월식주(月息洲) 사람들이 많이 죽고, 동쪽 지역의 운해주(雲海宙) 땅을 크게 부수었다. 이 기록은 배달나라 시대인 서기전3400년경에 일어난 여와(女娃) 대홍수와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마고성 시대에 이미 나름대로 역(易)과 역법(曆法)이 정립되어 있었는데, 배달나라 시대의 태호복희역과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마고성 시대의 역(易)과 역법(曆法)이 황궁씨가 그대로 이어 사용한 것이 된다.
마고성 시대에 이미 북두칠성이 북극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이치를 파악하고,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1일 4시(四時), 1주(週) 7일(日), 1기(期) 4요(曜) 28일(日), 1년(年) 4계(季) 13기(期) 52주(週) 365일(日)의 역법(曆法)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법을 한국(桓國), 배달(檀國), 단군조선(檀君朝鮮)이 그대로 답습하여 정치제도에도 응용하였던 것이 된다.
황궁씨는 분거과정에서 선착한 족속들과 이동하는 족속들 사이에 발발한 불화와 전쟁을 해결할 방도로 천부삼인(天符三印)의 제도를 정립시켰다. 천부삼인은 이미 있던 천부(天符)에 하나를 더하여 천지인 삼인으로 하여 홍익인간 세상을 만드는 원리로 정립시킨 것이 된다. 천부(天符)는 마고성 시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천성(天性)을 유지하도록 하고 하늘의 질서, 법(法)이 되는 천음(天音)을 모두 듣고 따르도록 하기 위한 상징물로서 거울과 방울이다.
황궁씨는 본성(本性)을 잃고 사악해져 버린 사람들을 가르침을 주어 구제하고, 한편으로 가르침을 외면하고서 악(惡)을 계속 행하는 무리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그 악을 제거하고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거울과 방울 외에 칼을 추가하여 삼인(三印)을 정립하였던 것이다. 즉 칼은 자르는 용도로 사용하는 물건으로서 천부(天符)로서의 칼은 상징적으로 악(惡)을 제거하기 위한 필요악(必要惡)의 기능을 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된다.
서기전6100년경 황궁씨가 천부삼인을 유인씨(有因氏)에게 전수(傳授)하였다. 유인씨는 황궁씨의 장자로서 황궁씨를 따라 마고성을 떠나 천산주(天山洲)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시조가 되는데, 마고성을 하늘이라 하면 마고성의 아래 지역은 땅나라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류시조라 부르는 나반(那般)이, 한국(桓國)의 임금이던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삼신(三神)으로 모셔지는 인물로서 유인씨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천산(天山)의 동쪽에 해당하는 몽골, 만주 지역에 이루어진 문명은, 정착이 이루어진 시대인 황궁씨 한국(桓國) 시대의 말기로부터 유인씨(有因氏) 시대에 걸쳐 발전된 것이 되는데, 특히 요하문명권에 속하는 유적과 유물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마고성 시대 이후의 인류문명은 제족들의 종주(宗主)이던 황궁씨가 다스리던 한국(桓國)문명에 속하는 것이 되고, 세계 4대문명은 서기전7197년경의 사방분거시로부터 약1,000년에 지나는 시기로서 서기전6000년경부터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세계4대문명지역인 수메르 지역과 이집트 지역의 문명은 서기전5000년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발굴되고 있으며 그렇게 인식된지 오래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의 역사가 되는 요하문명이 서기전620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연대가 밝혀지는 것은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다.
서기전7197년 갑자년에 시작된 황궁씨(黃穹氏)의 한국(桓國) 시대는 약1,100년이 지나는 서기전6100년경에 유인씨(有因氏)에게 전해져, 중기 한국(桓國) 시대로 접어든 것이 된다. 한국(桓國) 시대는 황궁씨, 유인씨, 한인씨(桓因氏)의 3 시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모두 마고성(麻姑城) 시대의 낙원세상(樂園世上)을 지상에 실현시키는 방도로서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이었으며, 홍익인간 세상을 위해 공력(功力)을 쏟은 시대이고, 또한 홍익인간이 실현된 시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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