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작은 죽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밤의 신과 암흑의 신 사이에서 잠의 신 ‘힙노스(Hypnus)’가 태어난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는 쌍둥이 형제다.
기면증(嗜眠症, Narcolepsy)으로 내원한 여중생. 단순히 졸리거나 피곤한 것과 달리 일상생활 중에 마치 최면에 걸리듯 갑작스레 잠에 빠져드는 병이다. 스스로의 의지나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나타난다. 때로는 운전 중에 잠들기도 한다.
아이는 한 학기 전 서울로 전학왔다. 아버지가 고교 학군을 고려해 강남으로 전학시켰다. 성적이 상위권이던 아이 역시 기대에 부응하려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등수는 계속 곤두박질쳤다. 특히 수학은 버거웠다. 그 무렵부터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했다. 엄마는 단순히 체력저하로만 여겨 보약을 먹였다. 그런데 최근 수학 시험 도중 갑자기 잠에 빠져 0점을 받았다. 황당한 결과만 접한 아버지는 “정신을 못 차려 그렇다”면서 혼만 냈다.
그러나 기면증은 의지 부족이 아니다. 오히려 격차를 한꺼번에 만회해 보려는 과욕이 기를 꺾어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것이다. 목표와 현실 간 격차가 적당하면 의욕이 생기지만 너무 크면 지레 질려버린다. 무의식적 거부감에 기면증으로 도피한 것이다.
아이는 소음인이다. 위기가 닥치면 자신의 편을 만들어 보호하고 변화는 반드시 새로운 결론을 내려 머릿속을 정리하려 한다. 이런 기질을 ‘소음인 당여 극정야(少陰人 黨與 克整也)’라고 한다. 대충 모른 척 회피하는 태음인과 달리 소음인은 어떤 식이든 명쾌한 사고의 결론이 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불안해진다.
압박감이 심해지면 이런 기질이 강해져 중간이 없어진다. ‘모 아니면 도’ 혹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심리상태가 된다. 지난해 카이스트 학생들의 안타까운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성적 하락=낙오’라는 결론에서 다른 중간 돌파구는 찾지 못한 것이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전격적인 결정에 처음엔 ‘한번 해보자’라며 매우 의욕적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기대와 압박에 비해 단기간에 따라잡기엔 격차가 큰 것만 절감했다. 결국 ‘수학은 포기’라는 정반대의 극단에 이르고, 아이의 무의식은 기면증으로 빠져든 것이다.
같은 편은 동병상련의 전학생 친구들뿐이었고 함께 담배를 배웠다. 엄마는 “가래에 기침까지 한다”면서 금연침도 놔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의 흡연은 니코틴 중독이라기보다 일종의 도피수단이다. 또래의 동질감 표시를 위한 통과의례이자 부모나 주어진 현실에 대한 시위다.
차가운 부모의 태도 변화가 우선이다. 부모가 더 믿어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부모에게 기댈 수 있다면 굳이 또래들과 담배를 필 이유도 없어진다. 학군이 달라졌다고 내 실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그렇다고 떨어진 것도 아니다. 아이에겐 이미 선행학습을 한 친구들과 비교하지 말고, 원래 내 실력에서 한 발씩만 나아가자며 다독였다.
쌩쌩 달리는 고속열차 속에서 이미 질려버린 아이를 더 재촉하면 중심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힙노스는 막다른 역에 처한 아이를 향해 잠의 씨앗을 뿌려대고, 결국엔 타나토스의 본능마저 일깨우려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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