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는 항상 소의 발자국을 따른다. 그림자 역시 그 주인을 뒤따른다. 순간을 참지 못해 내뱉는 분노 역시 마찬가지다. 질량도 형체도 없기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착각할 뿐이다. 그러나 대를 거쳐 유전처럼 돌고 돌아도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우울증으로 내원한 20대 여성. 책만 보면 글씨가 흐릿해지는 학습장애와 히스테리성 발작 때문에 학교생활이 힘들어 대학원도 휴학 중이다. 1년 넘게 치료 중이지만 큰 차도가 없다. 그러나 보호자인 엄마는 병에 대한 걱정보다 “독립할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도 부모의존이 심한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딸에 대한 불만부터 늘어놓았다. 이에 질세라 환자는 “모든 게 우울증에 걸려서 그런 것 아니냐”라며 티격태격했다.
성정분석 결과 환자의 마음은 ‘태음인의 거처(居處)’ 상태였다. 새롭고 낯선 것에 겁이 많은 태음인이 오로지 익숙한 것만 붙잡고 있는 심리다. 정도가 심하면 우울증처럼 병이 된다. 대학원 리포트 준비 도중 갑자기 숨이 막히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식이다.
우울증의 출발은 엄마의 폭력이었다. 엄마 역시 감정기복이 심한 조울증이 있었다. 환자는 어릴 때부터 수시로 엄마에게 폭언과 손찌검을 당했다. 불행히도 엄마 역시 친정 부모로부터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랐다.
폭력의 대물림 속에서도 늘 1등만 하는 환자의 여동생은 엄마의 예쁨을 받았다. 반면, 엄마의 성에 차지 않았던 환자는 모든 화풀이의 대상이었다. 엄마의 차갑고 폭력적인 면에서 벗어나 따뜻한 아버지에게 의존하려는 인격이 형성됐다. 성인이 되어서도 의존적 성향은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의 의존적 성향과 우울증은 모두 엄마에 대한 우회적 공격이자 보복이다. 직접 공격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힘이 모자란 상황에서 선택한 수동적인 공격이다. 즉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통해 엄마 역시 고통받게 만든다. 반면 아버지에게선 지속적 관심과 사랑을 확인하는 구조다.
환자는 수차례 학업을 중도 포기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해외유학이며 여행을 수시로 다녔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옷도 아버지에게서 받은 용돈으로 사들였다. 죄책감까지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지출의 크기에 비례해 아버지의 관심과 애정을 얻고, 경제적인 것에 민감한 어머니에 대한 공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내면심리를 환자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펄쩍 뛰면서 어이없어했다. 물론 꾀병이 아니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의도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울증에 빠져 있는 고통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엄마에 대한 분노와 보복 욕구가 더 컸다. 그래서 우울증이 치유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울증 이면의 자신의 분노와 공격성을 환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렸다. 상당한 저항도 뒤따랐다. 그러나 마음에서 느낀 뒤에는 모든 게 달라졌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나타나던 히스테리성 발작도 멈췄다. 취업준비를 시작할 정도로 우울증도 호전됐다.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엄마와 환자 중 누군가는 여전히 앓아누워 끊임없이 보복을 꿈꾸며 서로를 탓할 것이다. 결국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치료의 관건이다. 그림자든 바퀴자국이든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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