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은 단연 이 시대의 화두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통 요구가 자신이 아닌 외부를 향해 있다.
불면증으로 내원한 60대 남성. 수면제로 겨우 2시간 자는 정도여서 몸이 축났다. 특히 소화력이 떨어져 매끼 죽만 먹다보니 3~4㎏ 더 빠졌다. 그는 “아들이 내 말을 잘 듣지 않아 불면증이 생겼다”고 할 뿐 다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생각대로 침만 놔달라고 했다. 다음날 환자는 대뜸 “왜 무료주차가 1시간뿐이냐. 건물주에게 규정을 고치도록 말하라”며 호통쳤다.
불면증과 화병으로 내원한 60대 여성. “며느리 때문에 병이 생겼다”는 환자는 상태를 묻자 지금까지 다녔던 병원의 의사들 흉만 늘어놓는다. 다음날은 뜸이 뜨거워서, 그 다음날은 침이 아프다며 치료를 거부했다. 한 달여가 지난 뒤 상황이 더 심해져 내원했을 때는 “왜 그때 빨리 치료하라고 말하지 않았냐”며 오히려 따졌다.
두 환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자기확신과 남 탓이다. 의사가 질문해도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다. 또 상대를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하고 상대의 말엔 좀체 귀기울이지 않는다. 어디서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 분을 주체하지 못한다.
자식과의 갈등 원인은 환자의 언행만으로도 충분히 추론된다. 소음인인 할아버지는 늘 자기 생각이 우선이다. 자신의 선입견을 무조건 ‘옳다’며 주변에 강요하는 식이다. 반면 태음인인 할머니는 자기경험만 믿는다. 지금껏 경험한 것 외에 새로운 대상은 죽을 것처럼 겁내고 거부한다. 나이가 들수록 ‘내 경험대로만 따라오라’는 식이 된다.
두 노인의 불면증은 아들, 며느리와의 갈등보다 자신과의 소통부재가 원인이다. 그래서 이제마는 ‘독행이후 박통야(獨行以後 博通也)’라고 말했다. 주변과의 소통은 자신의 내면을 홀로 다스리는 수행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소음인은 항상 자기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내 생각이 옳아’ ‘내가 최고야’ 하는 아집을 줄일 수 있다. 태음인은 남에게 대접받으려는 허세가 일어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해야, ‘내 경험대로만 따라오라’고 하는 교만함을 줄일 수 있다.
‘소통(疏通)’이란 한자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 ‘疏(소통할 소)’는 ‘疎(성길 소)’와 같은 글자다. 성긴 것은 간격이 빽빽하지 않고 드문드문 멀어짐을 의미한다. 여름철 내의는 헐렁해야 땀이 잘 소통되고, 농작물은 촘촘히 싹이 나면 솎아주어야 잘 자란다.
너무 가까이서, 빈번하게, 한껏 큰 목소리로, 상대만을 향해서 외쳐대면 더 잘 소통되리란 믿음은 착각이다. 자기 내면의 거침없는 확신부터 성기게 만든 뒤 상대에겐 낮은 목소리로 전해야 소통된다.
연금, 저축, 보험, 상조 등 노후대비책도 여러 가지다. 그러나 물질보다 자신과의 소통이 우선이다. 자칫 그저 작은 종지인 ‘소통(小桶)’이 된 줄도 모른 채 노후를 맞기 쉽다. 소통할 수 없는 고립된 삶, 울화만 치미는 불면의 나날은 젊어 준비하지 못한 ‘노추(老醜)’의 결과물이다.
새벽은 도둑처럼 오니 미리 대비하라 했던가. 늙음 또한 득달같다. 하릴없이 시간만 흐른다고 노인의 기품이 절로 생길까. ‘나는 잘 늙어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젊은 지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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