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무겁다. 그래서 용서가 복수보다 낫고, 용서도 화풀이의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먼저 용서하는 게 이기는 길이고, 가장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형태라고도 한다. 평생 행할 것 딱 한가지만 짚어달라는 제자들에게, 공자 역시 ‘서(恕)’를 꼽았다. 그러나 섣부른 용서가 때론 병을 크게 키운다.
가슴과 손, 발바닥에 열이 나서 갑갑하고 뜨겁다는 한 직장 여성. 진통제는 이미 듣지 않는 만성두통과 어깨통증, 아침이면 재채기에 눈까지 가려워지는 비염, 토끼눈처럼 충혈된 눈엔 만성결막염과 눈꺼풀경련, 조금만 신경쓰면 체하는 신경성위염, 음식을 먹으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는 과민성대장증후군, 어지럽고 메스꺼움이 동반되는 메니에르증후군 등 병명을 붙이자면 10개로도 부족하다. 한마디로 ‘화병’이다.
맡았던 큰 프로젝트의 실패와 대인갈등이 원인이었다. 결과도 결과지만 추진과정에서 1년 넘게 상사와 의견충돌이 심했다. 그러나 환자는 “10년 가까이 모셨던 상사라 최근엔 다시 화해하고 신앙의 힘으로 모든 걸 용서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환자의 눈시울이 금방 붉어졌다. 다 잊고 용서했는데 그때 이야기만 나와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울컥했다. 또 그 상사와 마주치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고 했다.
머리로는 용서했다 여기지만, 마음으로 화해되지 않은 것이다. 내면에서 불쑥거리는 상처를 끄집어냈다가 다시 억압하길 반복한 것뿐이다. 마음을 다스린다면서 오히려 화를 억누른 것이다. 신앙의 힘으로 용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더 깊숙이 몰고 간 것이다. 결국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를 병들게 만들었다.
과연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고 기억속 상처를 지울 수 있는가.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죄 짓고 신은 용서한다’는 말처럼 용서는 신의 특권이다. 인간이 인간을 섣불리 용서한다는 것은 또 다른 교만이다.
용서를 ‘화가 나도 참는다’로 착각하면 병을 키운다. ‘상대는 밉지만 내가 착하니까’ ‘내가 마음을 다스려야 하니까’라며 화를 속으로 삭이는 것일 뿐이다. 지난 상처를 섣불리 지우려드는 것도 좋지 않다. 면담치료는 억압이 아닌 당시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 생생히 느끼게 만든다. 대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객관적 시선에서 돌아보게 한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상대는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상대의 인격적 한계와 당시 주변상황들을 역지사지해보는 것이 전부다. 이를 통해 무의식에 고착된 상처를 분리하면 비로소 상대를 무딘 감정으로 마주할 수 있고 화병도 낫는다.
왼뺨을 맞았으니 오른쪽도 내밀겠다는 건 용서가 아니다. 차라리 이번에 또 그러면 상대의 오른뺨을 때려주리라 마음먹었다면 화병이 심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때처럼 또 당하고 참아주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그래서 ‘상대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준다’는 사전적 의미와 달리, 공자는 ‘서(恕)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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