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라면서 열두 번도 더 변한다. 따라서 서둘러 옥죄면 큰 재목을 잃게 된다. 또 너무 일찍 새겨진 주홍글씨는 자칫 평생의 상처가 된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로 내원한 초등 저학년생. 선생님으로부터 ADHD일 가능성이 높으니 병원에 데려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병원에서도 장기간 약물치료를 권유받았다. 학교에서 아이는 선생님 지시에 번번이 “왜 그렇게 해야 하죠?”라며 꼬박꼬박 되묻는다. 수업 중에도 궁금한 게 있으면 계속 손을 들고 있다. 친구가 먼저 장난을 걸어오면 원칙대로 친구에게 따지다가 선생님에게 혼난다. 친구 잘못인데 둘 다 벌을 서는 건 억울하다며 선생님에게 더 따지다가 또 혼난다. 이런 날은 여지없이 토한다.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고, 갑자기 온몸이 가려워서 여기저기 피가 나도록 긁는다. 엄마는 “이제 공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선생님 입장에서도 통제가 어렵고 산만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ADHD일까. 전체 아동의 3% 미만인데 일각에선 14%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선 3~4%, 영국에서는 1% 미만으로 진단된다. 대신 품행장애가 많지만 국내에선 조금 산만하면 무조건 ADHD라는 인식이 흔하다. 학교현장까지 남발되는 추세로 학생 통솔의 어려움을 ADHD로 유행처럼 몰고 가는 셈이다.
진찰 결과 아이는 ADHD가 아니었다. 물론 “침은 왜 맞느냐.” “왜 하필 다리에 맞나.” “몇 개를 맞나.” “왜 왼쪽에만 놓는가” 등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소음인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면 크게 잘못된 것도 없다. 충분히 설명해주자 ‘아하~’라며 그대로 수긍했다. 간혹 어른들도 뜨겁다며 투덜거리는 왕뜸치료를 50분이나 잘 참아냈다.
흥분된 행동은 소음인 기질이 억압당할 때만 나타난다. 궁금해하는 걸 답변도 해주지 않고, ‘어른이 시키면 그냥 따라오라’는 식일 때다.
소음인은 직선적 사고 유형이다. 막히면 우회로를 찾기가 어렵다. 논리와 현실이 다를 경우 현실을 뚫고 돌진해야 하는 식이다. 궁금한 것은 꼭 물어봐야 하고 명쾌히 수긍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주위를 잊을 정도로 깊이 몰입하다 보니 주변 분위기 파악이 늦다. 아이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아이다.
교육현실 탓만 할 수도 없다. 아이 성정을 일일이 배려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러나 물꼬만 잘 터주면 오히려 정신 에너지가 풍부하다. 공상과학에나 나오던 문명의 이기들이 현실에 가능해진 것은 이처럼 소음인의 끝없는 질문과 사고력 덕분이다. 그러나 학교에선 ‘그냥 따라오라’, 집에선 ‘참아라’는 식에 아이는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심포와 삼초 경락의 울체된 기운을 소통시키는 동시에 엄마의 중간역할을 강조했다. 아이가 억울함을 호소할 때는 진심으로 공감부터 해줄 것을 강조했다. 1년 넘게 심해지던 증상이 불과 한 달간 치료로 80%가 사라졌다. 문제 환경만 바꿔주면 아이들은 이토록 빨리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모범’이라는 기성 시각의 편리대로만 재단하면 아이의 잠재적 재능은 빛을 잃는다. 문제아나 장기간 약에 의존해야 하는 환자로 만들어 버린다. 다양성을 조금 더 인내해주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획일적 시각이 더 큰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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