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다.’ 전문가들도 곧잘 인용하는 이 표현에는 함정이 있다. 이 광고 카피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마케팅 차원에서 퍼트린 것이다. 우울증약에 감기약처럼 쉽게 접근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과연 우울증을 감기처럼 신체질환으로 보는 관점이 타당한가. 또 우울증은 감기처럼 정말 약만 먹으면 치료가 되는가.
대부분 우울증은 긴밀한 상대와의 소통부재에서 비롯된 좌절감이 원인이다. 그런데 환자 당사자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약만 먹으면 낫겠지’라는 식은 안일한 대처다. 소통부재의 문제는 더욱 은폐되어 환자를 점점 극단으로 몰고 간다.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내원하던 한 중년여성. 1년여 만에 걸려온 다급한 전화에서 한참을 흐느껴 울기만 했다. 성급한 결정은 하지 말라고 겨우 진정시켜 내원하게 했다. 진맥과정에서 관찰된 손목의 자해 흔적들은 그간의 심적 고통 수위를 말해줬다.
남편과의 소통부재가 원인이었다. 환자는 “남편과는 더 이상 말이 안 통한다”면서 울먹였다. 환자는 평소 화도 잘 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최근 스스로 주체하기 힘든 울분에 남편에게 험한 말을 퍼붓기도 했다. 또 대화 도중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충동조절이 어려워졌다.
교수인 남편은 ‘우울증이니까 약을 먹어라’라는 말만 할 뿐이다. 환자는 “살가운 대화를 기대하고 말을 꺼냈는데 공감은커녕 학생 가르치듯 정답만 말하곤, 내 말은 잘라버리는 태도에 이내 숨이 막혀버린다”고 했다. 더욱이 환자는 “남편은 내가 나태해서 우울증이 왔다는 식으로 말한다”면서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최근에는 딸아이로부터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빠는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엄마는 집에서 돈이나 쓸 뿐 하는 게 뭐 있냐”며 대들었다고 한다. 남편이 환자에게 평소 하던 말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딸에게서 들을 줄은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우울증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이들조차 몰라주면 아무리 약물치료를 받아도 병세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여성이 자신의 아이와 함께 자살하는 ‘메디아 콤플렉스’도 그 예다. 으레 엄마의 우울증으로 죄없는 아이까지 앗아간 ‘몹쓸 모성’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엄마의 우울증 이전에 남편과의 소통부재에 따른 원망과 증오의 결과물이다. 원망스러운 대상은 남편이지만, 정작 그럴 힘이 안돼서 아이를 대신해 공멸하는 행위다. 이처럼 우울증과 극단적 선택에는 항상 소통부재와 그로 인한 좌절감이 존재한다.
프로이트는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적 촉발원인’을 강조했다. 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융은 ‘한 사람에게 맞는 구두는 다른 사람의 발을 옥죈다. 모두에게 동일한 보편타당한 삶의 처방이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의 정신을 개개인의 성정으로 미분해 들어간 이제마의 사상의학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감기엔 감기약, 우울증엔 우울증약’이라는 언뜻 간명해 보이는 공식은 철회돼야 한다. 증상만 유사하다고 모두 동일한 병으로 취급되어 패스트푸드처럼 획일화된 우울증약만으로는 온전한 치료를 기대하기 힘들다. 증상 이면의 개개인의 삶과 상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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