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보탠다(補虛瀉實).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아가는 기본 원칙이지만, 때로는 ‘허허실실(虛虛實實)’의 묘미도 살려야 한다.
식욕 부진으로 내원한 초등 3학년생. 언뜻 유치원생으로 보일 만큼 체격이 작다. 식사하는 데 1시간은 기본으로 밥을 사탕 빨듯 입에 넣고 삼키질 않는다. 보약은 물론이고 장어며 흑염소며 먹여보지 않은 게 없다. 엄마는 “먹는 게 부실해 감기나 비염을 달고 살고 체격이 워낙 작아 또래에게 얻어맞진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습관성 구토가 문제다. 아이는 요구를 즉각 들어주지 않으면 얼굴에 핏기가 보이도록 힘까지 써가며 토해버린다.
아이의 증상 모두 체질 속에 실마리가 있다. 아이처럼 소음인은 소화기능이 선천적으로 약하다. 또래에 비해 식사량도 적고, 조금만 과식해도 속이 쉽게 부대낀다. 또 소화기에서 형성된 따뜻한 기운이 코나 호흡기로 잘 전달되지 못해 감기나 알레르기성 비염에 잘 걸린다.
정신적으론 어린아이라도 좋고 싫음에 대한 구분과 의사표현이 분명하다. 친구도 가장 마음에 드는 단짝 위주로만 사귄다. 지적 호기심은 강해 질문이 많지만 신체활동에 대한 욕구는 적은 편이다. 이런 경향들은 정(正), 부정(不正) 중 하나의 답을 찾는 소음인 심리유형에서 비롯된다. 자기 나름의 논리가 이미 있는데, 주변에서 상반된 강요를 하면 심하게 반발한다. 구토는 이 같은 반발심이 전환된 심리적 행위이며 언어표현이다.
음식도 자신의 선입견에 따라 편식이 심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외에는 좀체 먹지 않는다. 문제는 좋아하는 건 대부분 사탕, 과자 등 패스트푸드다. 엄마는 “몸에 안 좋은 건 알지만, 당장 밥을 안 먹으니 그거라도 먹여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못 먹게 하면 토할까봐 걱정이다.
그러나 이는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굶주린 이에게 밥 먹이기가 쉽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기가 쉽다’는 경구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사상의학적 관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음인은 안 그래도 위장 용량이 작은데, 군것질로 열량이 채워지면 더 이상 밥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아무리 보약을 먹여도 효과가 없었던 이유다. 이를 억지로 더 먹이려 강요하면 아이도 부모도 스트레스만 받는다.
대신, 군것질을 철저히 차단하면서 운동량을 서서히 늘려야 한다. 처음엔 부모가 인내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소음인의 식욕 증진 처방 역시 마찬가지다. 사상의학에선 보약제 외에 체질별로 기운을 돌리는 이기약(理氣藥)을 함께 사용한다. 즉 운동할 때처럼 기혈 순환을 촉진시켜 배고픔을 빨리 느끼게 만드는 원리다.
결국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 책상물림만 하는 아이의 운동량을 늘려가면서 보약을 써야 비로소 효과를 본다. “그럼 어떤 운동을 시켜야 하나” 묻기에, 엄마가 정해줄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관심을 보이는 운동을 함께 찾으라고 조언했다.
1년 뒤 아이는 인라인 스케이트에 흥미가 붙어 대회에도 출전했다. 키도 부쩍 컸고, 여전히 마르긴 했지만 예전과 달리 강단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인라인을 2~3시간씩 타고도 조금 더 타겠다고 할 정도로 체력도 식욕도 좋아졌다. 보약이 효과가 없다면 식욕 증진에 대한 관점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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