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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한방춘추

‘잘해야 본전’ 아이 보기


아이 키우는 공(功)은 없다고들 한다. 여느 집안일처럼 육아는 기껏 잘해야 본전이고, 까딱 잘못하면 책임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까지도 오로지 희생과 양보의 미덕으로 견뎌준 이가 없다면 온전한 가정은 존재하기 힘들다.

야경증(夜驚症)으로 내원한 두살배기.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깨어 운다. 직장인 엄마 대신 주중에는 외할머니가 아이를 돌보는데, 얼마 전 낮에 경기(驚氣)를 한 뒤부터는 밤마다 깨어 운다. 엄마는 “최근까지 멀쩡했는데 갑자기 왜 그럴까요”라며 따지듯 묻는다. 마치 외할머니를 문책하는 듯한 뉘앙스다. 동행한 외할머니는 죄인마냥 초조한 눈빛으로 말없이 서 있다.

어린아이는 뇌발육이 완전하지 않아 큰 질병이 없어도 경기를 할 수 있다. 다행이 뇌파검사상 이상이 없기에 혹시, 평소에 아이를 공중에 던졌다 받았다 하진 않았는가 물었다. 그러자 “아빠가 비행기를 태운다며 자주 그런다”며 “아이도 좋아서 까르르 웃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엄마가 되물었다.

그러나 안정된 아이는 소리 없이 빙그레 웃는다. 까르르 소리 내며 웃는 것은 기뻐서가 아니라 외부자극이 과해 놀란 것뿐이다. 공중으로 던져지는 공포감이나 충격을 웃음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앞서 길 가던 이가 갑자기 꽈당 넘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이는 고소하거나 즐거워서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심리적 충격을 완충하는 자동반응이다. 아이를 심하게 흔들거나 간지럽혀 억지로 웃게 하는 것도 경기나 야경증의 원인이 된다.

그제야 말없이 서 있던 외할머니는 자신의 입술 왼편의 감각이 먹먹하고 때로는 바늘로 찌르듯 콕콕 쑤신다며 조심스레 치료 여부를 묻는다. 할머니의 증상은 안면신경 일부에 문제가 생긴 삼차신경통이다. 손자가 경기할 때 함께 놀란 뒤부터 시작됐다. 고령이라 손자 보는 일이 힘에 부치는 데다, 요즘은 손자가 조금만 이상해 보이면 또 경기를 하는 게 아닌가 늘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또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인 같아 그동안 아프다 말도 못했고 사위나 딸 보기가 미안할 뿐이라며 자책했다. 이런 불안과 긴장이 병을 가중시킨 측면이 있다.

손자의 병은 할머니와 아무 상관없다고 분명한 선을 그어주었다. 대신 할머니의 병도 치료를 서두르는 게 좋겠다고 말하자, 딸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할머니의 병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도 딸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치료기간과 비용 따위만 묻는다.

소양인의 ‘과심(過心)’이다. 과심이란 감정기능은 우월하고 사고기능은 열등한 소양인이 사리판단을 할 때 내용이나 의미를 합리적으로 따지는 ‘사고’보다, 형식이나 수치 따위의 ‘감정’의 잔상에만 얽매이는 경우를 일컫는다. 할머니가 몸져눕기라도 하면 그땐 치료비용도 더 들 것이고, 또 아이는 누가 돌보며 그 대체 비용도 계산해보라며 딸을 설득해야 했다.

언젠가부터 어버이날은 5월 공휴일에서도 빠져버렸다. 그러나 평소 잊기 쉬운 소중함을 기념일을 통해서라도 기억해야 한다면, 어린이날보다는 어버이날을 더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보기 힘든 세태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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