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새의 날개가 아무리 커도 새끼의 몸통에 이어 붙일 순 없다. 새끼는 스스로 돋아나는 어린 날개로 홀로 비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날개를 다친 새는 그 날개가 아물면 언제든 다시 날아오를 수 있지만, 당장 안전해 보인다는 이유로 자식을 새장 속에 가두면 영원히 날 수 없다.
만성피부염으로 내원한 30대 남성. 얼굴과 두피에 울긋불긋한 피부발진과 가려움증으로 1년 넘게 고생 중이다. 처음엔 피부과 약을 2~3일 먹으면 진정되었는데, 지금은 잘 가라앉지 않는다. 재발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가려움은 배와 허벅지까지 넓어졌다. 피부색도 칙칙해져 대인관계도 힘들다고 호소한다.
환자가 “더욱 근본적인 한방치료로 바꿔보고 싶다”고 말하자, 보호자로 동행한 환자의 모친은 대뜸 “피부과를 가야지 한약으로 되겠느냐”며 끼어든다. 환자는 “제발 좀 그만하세요. 엄마 말대로 피부과 약은 먹을 만큼 먹어봤잖아요”라며 짜증을 낸다.
환자는 최근 이혼을 한 공무원인데 상명하복식 조직문화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증상도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확연히 심해져 전직까지 고려 중이라고 했다. 그러자 모친은 “그냥 공무원이 아니잖니, 신원조회도 까다롭고 얼마나 들어가기 어려운 곳인데…”라며 아들의 건강보다 대리만족을 통한 자신의 자존심을 앞세운다. 아들은 “엄마 뜻대로 이혼까지 했으면 이젠 제발 좀…”이라며 울컥했다.
환자의 피부염은 전형적인 스트레스성이다. 그 중심 환경에 아내, 직장 그리고 모친이 있었다. 근본적 개선을 위해선 이미 마음 정리가 된 이혼과 전직 문제보다 모친으로부터의 스트레스 해소가 관건이다.
환자의 모친은 영락없는 소음인이다. 사고기능은 우월하고 감정기능은 열등해, ‘내 결론이 옳으니 내 말대로 따라와라’는 식의 긍심(矜心)을 발하기 쉽다. 긍심이 강해지면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돌진하며 상대의 기분 파악이나 주변에 대한 배려는 적어진다.
정작 환자의 모친은 스스로를 늙어서까지 자식 뒷바라지에 지극정성일 뿐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긍심은 이미 배부르게 먹고 난 이에게도, 이 음식이 정말 맛있으니 더 먹으라고 끊임없이 채근하는 식이다. ‘맛있다’는 혼자만의 사고에 빠져, 상대가 이미 배 터지기 일보직전이라는 감정적 배려를 잊기 쉽다.
모친의 긍심이 강해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결혼 후 시부모의 채근에 못 이겨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출산 후에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 과도한 보상심리로 나타난 것이다. 모친에겐 내가 원하는 것 대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게 진정한 배려임을 설명하고 아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권유했다.
아울러 면역을 억제하는 양약과 달리, 오히려 피부 재생속도를 극대화시켜 스트레스로 인한 열독을 외부로 발산시키는 한약을 처방했다. 모친은 2차 면담에도 함께 내원했다. 그러나 “피부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했을 뿐 처음처럼 아들의 말을 꼬치꼬치 반박하지는 않았다.
부모는 장성한 자식마저도 자신들의 품안에 두려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자식을 두고 떠나야 한다. 그렇다면 새장 밖을 자유의지로 비상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면서 떠나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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