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醫學/한방춘추

엄마의 역풍 ‘공황장애’


어머니는 만물을 생육하는 대지이며 젖줄이다. 또한 무한한 포용과 따뜻함의 상징이다. 그러나 “어머니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한 대씩 얻어맞는 기분이다. 이 무슨 듣고 싶지 않은 말일까!”라며 몸서리치는 파우스트처럼 모성(母性)은 때론 황량함과 적막함의 원형이기도 하다.

공황장애로 내원한 30대 남성. 좁은 공간에서 갑자기 숨막히듯 호흡이 곤란해지고 급기야 구토를 한다. 평소 위장기능도 좋지 않지만, 소화상태와 상관없이 갑자기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본인의 결혼식 날 신랑대기실에서 막연한 불안감에 점점 호흡이 곤란해지고 식은땀이 나더니 구토를 한 것이 시작이었다. 위내시경도 받았지만 가벼운 위염뿐, 약물치료에도 차도가 없었다.

이후 지인의 결혼식장을 가거나 특히 장인어른과 동행하면 증상이 반복됐다. 결혼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감이다. 환자는 물론 인식을 하지 못한다. 그는 “결혼을 조금 늦추고 싶었을 뿐, 연애로 만난 아내와의 사랑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환자의 체질은 소음인. 어릴 적 인격형성 과정에서 자존심에 깊은 상처가 남으면, 성인이 되어 특정 대상에 무의식적 거부감을 갖기 쉬운 체질이다. 싫고 좋음에 본인도 이유를 모르고 ‘그냥, 왠지…’라며 선입견만 강해진다.

이 환자의 공황장애는 ‘모성’과 관련되어 있었다. 한 아이에게 엄마의 칭찬은 자존감의 자양분이 되지만, 부적절한 야단이나 체벌은 ‘가책’을 형성한다. 후자의 경우 사소한 지적이나 스트레스에도 필요 이상의 심한 가책을 느끼는 인격이 형성된다.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실질적 가장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남편처럼 무능해지지 않도록 엄하게 훈육했다. 어린 아들에게 늘 남자의 책임감을 강조하며 노골적으로 아버지를 질타했다. 결혼 혹은 부성(父性)에 대한 부담감과 가책이 성장과정 내내 무의식속에 깊이 각인된 것이다. 결국 자신의 결혼과 맞닥뜨려지면서 극도의 거부감이 공황장애로 이어진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은 ‘현실계’와 ‘상징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아버지와 달리 좋은 직장에 엘리트로 성장하였음에도 ‘아버지, 가장, 무능력’이라는 상징들이 자신의 ‘결혼’과 혼재되어 거부감이 촉발된 것이다. 장인 역시 그 중압감을 더하는 요소다.

평소엔 무의식 한편에 잠복되어 있다가 이를 결정적으로 자극하는 상황에 노출되면 공황장애처럼 다양한 질병으로 나타난다. 최근의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 보이지만 자극요인일 뿐, 근본적 원인은 이미 성장기에 형성된 상처와 연관된다.

소음인의 신경과민을 누그러뜨리는 한약 치료와 자신은 정작 인지하지 못했던 심리적 상처를 객관적 시선에서 되돌아보게 하는 면담치료를 통해 환자의 증상은 조금씩 호전되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모성이 충만할 순 없다. 때로는 삶에 지쳐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고, 자신들이 불안해서 아이를 더 닦달하기도 한다. 반대로 기분이 좋으면 멋대로 아이를 치켜세우는 것이 보통의 어머니다. 그러나 이런 훈육들은 아이의 인격에 황량함이란 악성코드를 심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모의 그림자를 자식에게 내려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은총이다.

'醫學 > 한방춘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음인 아이에겐 ‘판다 대드’  (0) 2013.04.29
‘허허실실’의 묘미  (0) 2013.04.25
‘잘해야 본전’ 아이 보기  (0) 2013.04.23
‘헬리콥터 맘’ 때문에  (0) 2013.04.22
‘어찌하라’의 역풍  (0) 2013.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