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모진 이가 있으면 반드시 효자효부가 먼저 병을 얻게 된다.” 이제마는 인간의 질병은 주색재권(酒色財權, 술·여색·재물·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되고, 탐욕의 결과는 당사자는 물론 가족에게도 그 여파가 미친다고 보았다.
불면증으로 내원한 중년 여성. 새벽녘까지도 잠들기가 어렵다. 감기처럼 오슬오슬 추웠다가도 금방 얼굴로 열이 훅 올라오는 불쾌감이 반복된다. 또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시고 저린다. 보통의 근육 통증과 양상도 달랐다.
진통제도 먹고 침과 물리치료도 받았지만 이상하게 낫지 않았다. 증상들은 수년간 병간호를 해오던 시아버지의 장례식 직후부터 시작됐다. 환자는 장례식 동안 시동생들로부터 ‘절차가 소홀하다’ ‘아버지를 잘못 모셨다’는 등의 각종 원망을 들어야 했다. 와병 중엔 잘 찾아오지도 않다가 장례식에선 효자로 돌변해 온갖 도리와 명분을 따졌다고 한다.
게다가 “형수는 슬프지도 않은가 보다”라며 불효를 운운했다. 큰며느리인 환자는 상을 치르면서 이상하게 슬프지 않고 멍한 상태여서 눈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동생의 질책에 반박도 못하고 죄책감만 느꼈다. 여기에 억울함이 더해져 불면증과 잘 낫지 않는 통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화병으로 진행 중인 억울형 불면이다. 잠자리에 누워도 안 좋은 기억과 상처받은 말들이 자꾸 생각나 울컥울컥 하느라 잠을 못 이룬다. 도망가지도 싸우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지내면 결국 화병이 된다. 수면제보다 울화를 풀어주는 것이 통증과 불면증 치료에 효과적이다.
마음속 상처 해소를 위해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애성(哀性)과 애정(哀情)의 차이를 설명했다. 내면의 슬픔이 애성이라면, 겉으로 우는 행위로 표현되는 것은 애정이다. 애성이 진정한 ‘슬픔’이라면 애정의 본질은 ‘체념’이다.
진정한 슬픔의 상태에서는 눈물도 울음소리도 내지 않는다. 따라서 고인을 오래도록 모신 환자의 멍한 듯한 심리상태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오히려 소리내 우는 시동생들은 이미 고인을 마음속에서 잊고 체념한 것이다. 애써 곡소리를 크게 하는 것은 주위를 의식한 연출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이와의 모든 이별에는 애도기간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이별의 현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당장은 멍할 뿐이다. 고인의 부재를 머리와 가슴에서 받아들이는 시차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현실로 체감한다. 그때서야 가슴속에서 더 이상 부질없음의 눈물이 왈칵 나는 것이 ‘애성’, 즉 진정한 슬픔이다.
반면 호들갑스러운 눈물을 이내 드러내는 ‘애정’은 이미 체념한 것이다. 애도기간조차 필요없을 정도로 너무도 쉽게 이별을 받아들인 것이다. 평소 속썩이던 자식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상주에게 ‘크게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며 슬픔에 빠진 효자효부를 도리어 나무라는 미욱한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호상(好喪)’이라며 이내 술판, 고스톱판을 벌인다. 최소한의 애도조차 표할 줄 모르는 진상(塵想)은 있어도, 단 한번 뿐인 인생에 100세를 살다간들 호상이 어디 있겠는가. 현명한 이가 연을 끊을 각오로 그 탐욕을 단호히 막아주지 못하면, 결국 어진 이가 먼저 병을 얻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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