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보지 않는 비수는 없다. 뜨거운 독을 쏟아 넣어 건강한 육체를 죽게 만들지 않는 술잔도 없다.
괴테는 “상점의 물건 치고 인간과 세상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 건 없다”고 말했다. 문화 아이콘으로까지 확산되는 테이크아웃 커피는 어떨까.
두통과 생리통으로 내원한 30대 여성. 꼭 감기몸살처럼 몸이 쑤시면서 열이 났다가도 춥고, 소화장애와 설사도 동반된다. 콧물, 재채기 등 알레르기성 비염도 여름 들어서 심해졌다. 두통약이나 지사제가 잘 듣지 않고, 오히려 약까지 체한 듯 속이 불편하다.
혀와 맥에 나타난 스트레스 반응은 심하지 않았다. 진맥 결과 ‘한궐두통(寒厥頭痛)’이었다. 흔히 냉방병이라는 것도 이 범주에 속한다. 체내에 차가운 기운이 너무 강해져 생긴 불균형이다. 변호사답게 환자는 “평소 땀도 잘 흘리고 체온을 재도 몸에 열이 많은 편이다. 더욱이 성격도 외향적인 체질인데, 혹 세균이나 바이러스 문제가 아니냐”며 진단에 이의를 제기했다.
실열(實熱)과 허열(虛熱)의 차이다. 환자의 몸은 겉으론 열이 나지만 실제 속은 차가운 허열 상태다. 마치 드라이아이스와 유사하다. 본질은 주변을 얼려버릴 정도지만, 막상 손바닥에 올려보면 기화열로 인해 뜨거운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표면적 현상이 꼭 이면의 본질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불황일수록 여성의 옷차림과 화장이 더욱 화려해지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불황의 그늘과 내면의 우울감을 보상하기 위해 겉으로는 더 화려함을 추구한다. 인체의 생리도 유사하다. 냉성이 강한 음인들이 속이 더욱 차가워지면 면역반응의 일종으로 겉으론 열이 난다. 이런 경향은 여름에 더 심해진다. 더위에 적응하기 위해 혈액공급도 오장육부보다 체표부위로 더 몰린다. 속은 냉기가 많아졌는데 덥다고 찬 음식을 과식하다 탈이 난다.
환자는 커피로 하루를 시작해 대여섯 잔씩 마신다. 식사 후엔 으레 커피잔이 손에 들려있다. 여름이라 얼음까지 넣어 차게 마시는 데다, 과일이나 빙과류 등 차가운 음식 섭취도 늘었다. 하루종일 에어컨 바람 속에서 지내는 것도 문제다. 냉기를 피부로 접촉하고 호흡기로도 들이마시니 체내 한열의 균형은 급격히 무너진다.
운동을 하면 그나마 낫지만 운동량은 늘 부족하다. 운동 후에 맥주나 찬 음료를 마시면 이마저도 허사다. 목에 넘기는 순간에는 시원하지만, 몸은 더욱 냉해져 허열이 생겨 다시 갈증이 난다. 특히 카페인이나 탄산음료는 점막을 건조하게 만들어 갈증은 악순환된다.
왕뜸을 떠주고 속을 따뜻하게 만드는 한약을 처방했다. 커피 등 냉성이 강한 음식도 함께 줄이자 증상들은 빠르게 호전되었다. 대신, 생강차나 대추차 등 여름일수록 따뜻한 성질의 음료를 권했다. 조상들은 건강한 여름나기를 위해 이열치열의 묘미를 살렸다.
삼계탕, 보신탕, 육개장 등 열성이 강한 삼복음식들도 한 예다. 식후 음료 역시 따뜻한 숭늉이나 식혜, 수정과 등이었다. 커피보다 멋스럽진 않아도 한결같이 속을 따뜻하게 해준다. 적어도 건강에 관한 한 현명한 발견이었다. 현미경상 세균이나 바이러스에만 집착하는 것이 과연 더 과학적이라 할 수 있을는지. 그래서 괴테는 충고한다. 어리석은 생각이든, 똑똑한 생각이든 옛사람들이 이미 생각지 않은 게 없음을 항상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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