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조용히 자신을 태워 주위를 뜨겁게 만든다. 반면, 우레는 세상을 뒤집을 듯 요란한 천둥번개를 동반하지만 그 결과는 좁고 파괴적이다. 작은 음식조차 익혀낼 수 없다. 주역 팔괘 중 불을 상징하는 이괘(離卦)와 우레를 상징하는 진괘(震卦)에는 이처럼 상반된 세상 이치가 담겨있다.
“어디가 불편하시냐”는 질문에 아픈 곳은 말하지 않고 엉뚱한 사설만 한참 늘어놓는다. “○○대학병원 김 교수 아시죠. 제가 10년 전부터 그분께 당뇨병 치료를 받는데…”라며 지난 병력을 미주알고주알 나열한다. 그런데 오늘 내원 사유는 병력과는 상관없는 불면증이다. 유명 대학병원 교수를 거론해 자신을 포장하려고 한참 진을 뺀 것이다.
정작 아픈 곳은 제대로 말하지 않고 “원장님이 나만 잘 고쳐주면 내가 소개할 환자들이 수두룩하다”라며 설레발 놓는다. 때로는 보약을 먹을까 생각 중이란 말을 흘리기도 한다. 의사와 흥정하자는 것이다.
나이를 떠나 아예 다리를 꼬고 배를 내밀고, 턱을 괴어가며 말하기도 한다. 또 명품 가방을 일부러 보란듯 진료실 책상 위에 올려놓는가 하면 대뜸 자신의 직업부터 밝히는 이들도 있다. 아픈 곳을 굳이 영어를 섞어가며 배운 사람은 배운 대로 안 그런 척 더 교묘하게 티를 내기도 한다.
정작 치료의지가 간절하고 후에도 도움을 줄 사람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라도 줄 양 미리 떠벌릴수록 후일의 결과는 정반대다. 이괘와 진괘의 교훈처럼 소리만 요란한 것은 거짓된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도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사상의학에선 ‘치심(侈心)’으로 풀이한다. 낯선 환경에 겁이 많은 태음인이 겁을 감추고,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 자신이 먼저 대접받고 싶은 조급함이다. 한자 뜻 그대로 사치(奢侈)스러운 마음이다. 불처럼 소리 없이 주위를 데우려는 노력보다, 우레처럼 순간 요란스럽게 떠벌리는 마음이다.
그러나 상대 입장에선 대접은커녕 거부감부터 든다. 차라리 “잘 보신다고 주변에서 추천하기에 믿고 찾아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이다. 처음 본 의사에게 이 이상의 칭찬은 없고, 의사는 자신의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고 싶어질 것이다. 어찌 의사와 환자만의 문제이겠는가. 식당이나 상점 등 어딜 가도 마찬가지다.
치심이 강한 환자들은 병이 많이 호전되어도 때론 “하나도 좋아진 게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더 많은 대접을 바라기 때문이다. 만약 의사가 이로 인해 치료방향을 엉뚱하게 바꾸기라도 하면 결국 환자 손해다.
오고가는 신뢰는 우레처럼 겉으로 요란하진 않다. 그러나 궁극에는 내실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손만 잡아도 열정어린 눈빛만으로도 전하고 느낄 수 있다. 굳이 감언이설로 표현하려 든다면 이미 사랑도 열정도 식은 것이다.
신경성질환의 원인을 환자 마음에서 찾다보면 뿌리깊은 ‘치심’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황금이 비처럼 쏟아져도 물욕을 다 채울 수 없듯 대접받으려는 인간의 치심 또한 끝이 없다. 치심이 강해지면 자기 꾀에 자신부터 속게 된다. 결국 가까운 이와도 서로 반목하게 만들어 질병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주역과 사상의학의 공통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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