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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한방춘추

만병통치약은 없다


하늘 아래 딱히 새로운 건 없다고들 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이 등장하지만 정작 인간존재의 본질에 대한 혜안은 고전을 뛰어넘지 못한다. 반면 하늘 아래 똑같은 일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경계하고 경계하라’는 가르침처럼 항상 새롭게 판단하길 요구한다.

만성 두통과 부비동염(축농증)으로 내원한 초등생. 10분이 멀다 하고 코를 푸느라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 아니면 코 뒤로 콧물을 그냥 삼켜야한다. 감기에만 걸려도 중이염까지 이어지고, 최근에는 방안에 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갑갑하다며 짜증도 부쩍 늘었다.

그런데 아이의 증상이 잘 낫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한 홍삼제조회사의 고위간부라 지난 수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홍삼을 먹었다. 최근에는 집중력이 떨어진다 싶어 더욱 용량을 늘렸다. 그동안 아이에겐 홍삼은 만병통치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이의 체질은 태음인이고, 증상은 폐조열증(肺燥熱證)이었다. 홍삼은 인삼처럼 소음인의 냉한 기운을 해소하는 데 명약이다. 태음인 중에도 냉기가 많은 유형에선 일시적으로 효과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장복하면 체질에 맞지 않아 결국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소양인처럼 어지럽거나 두통, 가슴 답답함이 즉각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몸은 완충기능을 통해 독성을 걸러내며 어느 선까지는 견딘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면 홍삼 부작용인지 모를 때가 많다.

속이 냉한 소음인에겐 홍삼이나 인삼은 명약이다. 그러나 아이는 태음인데다 콧물도 설태도 모두 누렇고 맥도 빠른 열증을 보였다. 두통과 가슴이 답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엔진과열이라 냉각기를 돌려야 할 때 홍삼으로 더욱 고속 기어만 넣은 격이다.

엄마가 홍삼에 집착하게 된 연유는 남편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이가 유치원생 때만 해도 입도 짧고 마른 체격이었는데 홍삼을 먹고 식욕도 늘고 살도 붙었다. 그 뒤론 어디가 조금만 아프다 싶으면 무조건 홍삼부터 먹였다. 그러나 현재 아이는 통통한 체형에 비만과 폭식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예전과 지금의 상황이 전혀 다른 셈이다.

‘약효는 좋은데 부작용은 없다’는 말은 솔깃한 유혹이다. 이는 펀드투자를 하면서 ‘수익률은 높은데 리스크는 하나도 없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치러야 할 대가를 외면하려는 인간의 게으른 마음을 유혹하는 것이다.

“홍삼은 아무 때나 먹어도 좋은 거 아닌가요?”라는 엄마에게 홍삼을 중단하도록 설득했다. 대신 폐열을 내려주는 치료로 단 1개월 만에 아이의 증상은 현저히 좋아졌다. 그제야 엄마는 “집중력도 좋아졌다며 머리 좋아지는 약도 함께 들어갔느냐”며 웃었다. 홍삼으로 탁해진 폐열을 내려 머리를 맑게 한 것뿐이다.

과연 만병통치약이란 게 존재할까. 약과 독은 동전의 양면이다. 상황에 맞으면 약이고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된다. 누가 무얼 먹고 좋다고 내게도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 설령 내가 먹고 좋았다가도 질병과 몸 상태가 다르면 또 다른 결과가 생긴다.

삶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에 한 번 성공했다고 그 방식만 고집하거나, 반대로 실패했다고 겁내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새로운 성취는 얻기는 어렵다. 항상 오늘 새롭게 판단해야 후회와 허물이 적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