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속에 때때로 가시가 숨어있다. 큰 가시도 찔리면 아프지만 목에 걸려 애를 먹이는 건 정작 애매한 크기다. 상처가 되는 말 역시 농담이나 덕담을 가장한 것들이 더 아프다. 뱉어내기도 삼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급체로 내원한 50대 주부. 특별히 과식한 것도 없는데 명치 밑이 답답해지다가 속이 울렁거린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어지럼증까지 동반됐다.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손발이 싸늘해졌다. 남편이 바늘로 손을 따주긴 했지만 소용없었다. 물만 먹어도 토할 것 같고 소화제까지 체한 느낌이다.
급체는 일종의 신경성 위경련이다. 식도나 십이지장과 연결된 위의 조임 밸브가 과도하게 긴장된 것이다. 멀쩡하던 종아리 근육이 순간 쥐가 나듯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장에도 경련이 생긴다. 환자는 “명절과 시어머니 생신이 1주 간격으로 있는 요즘이면 자주 그렇다”면서 “체한 느낌이 한 달씩 갈 때도 많지만 내시경 검진선 경미한 위염뿐이었다”고 말한다.
이번 위경련은 시어머니와 아래 동서로부터 시작됐다. 동서는 늦게 와서 일은 하지 않고 생색만 낸다. 그럼에도 시어머니는 동서를 더 예뻐한다. 동서의 친정이 잘 살고 혼수도 더 많이 해온 터라 결혼 초부터 차별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가족모임 중 동서가 자신의 딸아이 성적을 갖고 이러쿵저러쿵 농담으로 웃음거리를 만들어버렸다. 내심 불쾌했지만 농담처럼 한 말이고 다른 가족들이 순간 다 웃으며 넘어가는데 정색할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속에선 부글부글 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복통이 시작됐다. 침과 한약으로 위경락을 풀어주자 증상은 서서히 호전되었지만 마음속 응어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상의학적으론 소양기가 부족해 감정적 순발력이 떨어지는 성정에서 잘 발생한다. 상대의 말에 순간 대응할 타이밍을 놓친 뒤 뒤늦게 혼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신체 일부분이 과도하게 긴장된다. 그래서 두통도 자주 동반된다. 과식 탓만도 아니기에 단순 소화제로는 효과가 없다.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 속의 날카로운 가시들이 원인이다.
주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의 성적 비교에서부터 노인들의 은근한 자식비교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대학진학이나 취업, 결혼문제 등 제발 물어보지 않았으면 해도 어김없이 질문들이 날아온다. 명절에 친척들 보는 게 두렵다고까지 한다. 겉으론 명절 덕담이나 안부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에는 상대의 상처를 건드려 자신을 위로하려는 고약한 방어기제가 숨어있다.
흔히 농담은 농담일 뿐이라고 말한다. 농담에 정색하면 소인배로 몰린다. 그러나 이는 가해자 측의 논리다. 프로이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라는 저서에서 ‘농담은 인간의 공격성 표출을 위해 교묘하게 위장된 편법’이라고 밝혔다. 정색하고 상대를 공격하면 일이 커진다. 반면 농담으로 위장하면 상대방의 심기는 건드리면서도 제3자들이 함께 웃어넘겨 상대로부터 반격당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속앓이 하는 희생자가 남게 된다. 농담에는 분명 가시가 있다. 삼킬지, 뱉어낼지 빨리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대가를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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