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에서 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시비나 갈등이 생기면 이기고 싶은 호승지심(好勝之心)이 있다. 그런데 유난히 이런 기운을 강하게 타고난 체질이 있다. 이는 사무적인 관계나 대외활동을 할 때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가정에선 때로 불화를 부르기도 한다.
불임으로 내원한 30대 중반의 부부. 둘 다 검진상 문제는 없었다. 시험관아기 시술도 두 차례 받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아내는 태음인, 남편은 소양인이다. 남편은 직장내 평판도 좋고 유머감각이 뛰어나 밤이고 주말이고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좀처럼 집에 있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 이야기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그동안 남편에게 섭섭하고 억울한 게 많은 눈치다. 불임 외에도 만성적인 두통과 어깨결림, 수족냉증을 함께 호소했다. 스트레스로 결혼 전에 비해 체중도 4~5㎏ 늘었다.
아내의 하소연은 태음인 여성과 소양인 남성이 부부일 경우 나타나는 전형적인 갈등이다. 즉 소양인은 밖에서 이기려는 성향이 강하고 안을 지키는 데는 관심이 적다. 반면 태음인은 안을 지키려는 속성은 강하나 변화가 많거나 사무적인 바깥일에는 능하지 못하다.
소양인은 외부활동이나 직업관계, 자신의 책임소재가 분명히 드러나는 일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여 잘 챙긴다. 그러나 가사일처럼 잘해도 공이 없고, 못하면 책임추궁만 당하는 일은 아예 회피한다. 결국 뒷감당은 전부 태음인 아내의 희생으로 채워진다.
소양인은 일을 핑계로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려 한다. 아내의 지적에도 요리조리 그럴듯한 이유를 만드는 소양인의 순발력을 태음인이 이기기는 힘들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결국 태음인 아내는 속으로 불만이 쌓이고 심하면 울화병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자궁근육 역시 긴장되게 마련이고, 검진상 아무 이상이 없는 듯해도 착상이 잘 안 된다.
막연히 ‘다르다’ 싶었던 서로의 성향 차이에 대해 상세히 구분해주었다. 우선 아내에게는 ‘불만을 쌓아두었다 폭발하듯 표현하지 말고, 그때그때 요구해야 남편이 그나마 변화하고 도와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남편에게는 ‘태음인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알아주겠거니 기다린다. 아내가 말로 직접 표현할 때는 이미 한참 늦은 것이니 즉각 요구를 들어주고, 항상 말보다는 아내의 표정을 살피라’고 주문했다.
아내에겐 자궁근육을 따뜻하게 하고 태(胎)의 착상을 돕는 한약을 처방했다. 남편에겐 술을 줄이게 하고 비만치료를 했다. 아울러 주말에는 부부가 취미생활을 함께 하도록 권유했다. 3개월여 뒤 임신에 성공했다는 환자의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깜짝선물로 준비해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임신이 됐다고 말했다. 그간 많은 노력을 해도 안되던 임신이 마음 편히 떠난 여행지에서 성공한 것은 결코 우연으로 보긴 어렵다.
소양인의 호승지심은 때론 가정을 전쟁터로 만든다. 그러나 ‘어떻게 이길까’보다는 ‘어떻게 박수받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승리에만 만족하면 주변의 억울한 패자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한다. 반면 누군가의 마음을 얻은 박수야말로 오래 이기는 길이다. 그것이 가정이라면, 내 가족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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