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라. 좋은 말이지만, 그 ‘경계’와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은 최선은 과욕일 뿐이다.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켜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폭식증으로 내원한 20대 여성. 최근 몇 개월 사이 무려 10㎏이 쪘다. 학습지 방문교사로 늘 시간에 쫓겨 아침은 굶고 점심은 빵이나 패스트푸드로 때운다. 저녁엔 긴장이 풀어지면서 허기가 져 허겁지겁 먹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힘들지만 성적 관리에다 학부모 불만 상담, 학습지 비용 수금까지 일일이 신경써야 했다. 최근에는 가르치던 학생이 중도에 그만두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잘못될까봐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고 호소한다.
그런데 보호자로 내원한 엄마는 대뜸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그렇다. 살을 빼려면 모질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데 의지가 약하다. 아무리 못 먹게 말려도 소용없다”며 딸을 몰아붙인다. 그러자 딸은 “엄마가 직장을 그만둔 뒤 나만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 그게 더 큰 스트레스”라며 울컥한다. ‘최선을 다하라’는 어머니와 ‘제발 내버려두라’는 딸의 승강이가 이어졌다. 환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안팎의 요구에 마음이 편치 않다. 식욕은 인간의 의지로 조절되지 않는 본능적 요소다. 무조건 참아서 극복되는 문제가 아니다. 본능적 요소는 억제할수록 오히려 욕구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적절히 해소하고 달래야 줄어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모질게 마음먹는 긴장감이 아니라 휴식이자 여유다.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고 몸도 마음도 다 지쳐 여력이 없는 것이다. 환자처럼 태음인의 식탐은 밖에서 참고 삭이며 상대의 비위를 맞추느라 생긴 욕구불만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딸의 의지를 탓하며 더욱 스트레스만 준 격이다. 참고 억누르는 식의 최선으로 해결될 ‘대상’이 아님을 몰랐던 것이다.
때론 많은 부모들은 자식을 무조건 가르치려 든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구분조차 간과한다. 성인이 된 자식이 말을 듣지 않으면 ‘품안의 자식’이라며 한탄한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은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덕목처럼 친근하게 교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의지박약으로 몰아붙이기보다 ‘밖에서 일이 힘들 텐데 잘 챙겨 먹어라’고 위로했다면 오히려 식탐은 덜해졌을 것이다.
성인이 다 된 자식도 일방적 훈육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굳이 가르치고 싶다면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 좋다. 환자의 어머니에게 한눈에 보기에도 과체중인 딸의 폭식이 걱정된다면 일일이 해결해주기보다 함께 운동이라도 하도록 권유했다.
환자에게는 식탐을 줄여주고 과체중으로 늘어났을 위를 조여주는 한약을 처방했다. 한 달 뒤 환자는 “몸이 가벼워져 일을 해도 덜 지친다. 어머니의 태도 변화로 집에 와도 마음이 편해졌다”며 웃는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한다’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해주었다. 모든 잔걱정의 대상들을 다 잘하려 애쓰면 인간은 견디기 힘들다. 미리 최선을 다해 대비하면 나아질 것과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운이 따라주어야 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걱정해도 달라질 수 없는 경계 너머의 일들은 과감히 하늘에 맡기는 것이 몸과 마음을 덜 지치게 하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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