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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한방춘추

기본 무시의 ‘혹독한 대가’


세상이 온통 속도전이다. 정치나 대통령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어린이 대상 학원조차 ‘속성지도’를 전면에 내세운다. 충실한 기본기보다 당장 이겨먹는 잔재주에 목을 맨다.

논어는 ‘근본에 힘써 근본이 확립되면 모든 방법이 생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고 가르친다. 왜 현자들은 멀고 돌아가는 것 같은 ‘근본’에 힘쓰라는 주문을 할까. 당장 이기기보다 후에 이기기 위함이다. 또 닥친 문제가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복잡한 실타래는 결코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구안와사로 내원한 20대 여성. 안면신경의 마비로 한쪽 눈꺼풀은 제대로 감지도 뜨지도 못했다. 입술도 반쪽이 마비되어 말할 때 입모양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음식이나 물을 마실 때도 내용물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벌써 1년째 대학병원에서 입원과 통원을 반복했다. 마비된 얼굴 근육을 직접 자극하는 전기치료 등을 받았지만, 초기에 약간 호전된 뒤로는 내내 차도가 없었다. 환자는 “처음에는 곧 낫겠지 했는데 이제는 거울을 보면 앞날이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가벼운 구안와사는 별다른 치료 없이도 1~2주 만에 회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환자처럼 중증의 경우에는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는 사례도 10~20%에 달한다.

좋다는 치료를 다하고도 후유증이 남는다면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 환경적 요소까지 자세히 문진하니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홍삼이다. 홍삼이나 인삼은 소음인 약으로 태음인에겐 독이다. 태음인 질병 중 구안와사처럼 내열(內熱)이 생긴 경우 홍삼이나 인삼은 그야말로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다. 그런데도 환자는 “홍삼은 아무나 어떤 병에도 좋다고 해 발병 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약 대신 먹었다”고 했다. ‘약은 조건에 맞을 때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기본을 무시한 대가다.

다음은 직장 스트레스였다. 비록 신체증상이라도 그 이면엔 마음의 문제가 관여한다. 환자는 팀장과의 마찰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며칠째 야근을 하던 도중 갑자기 구안와사가 발병했다. 그런데도 환경 변화 없이 계속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치료한 것이다. 그러니 직장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더 긴장하게 된다. 누군가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묻기라도 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된다. 스트레스와 연속된 긴장은 마비된 근육의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고, 즐길 수 없으면 잠시 도망가야 한다. 그러나 환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음만 초조해졌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흔히 말하는 ‘기본’에 속하기에 쉽게 간과한 것이다.

환자는 당분간 휴직을 하고 치료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침구치료 역시 마비된 얼굴을 직접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 손과 발의 혈자리를 사용했다. 허약해진 정기는 체질과 병증을 정확히 구분한 뒤 보강해주었다. 우울함과 긴장이 풀어지도록 밝은 음악을 자주 듣고, 코미디 프로그램은 꼭 챙겨서 보도록 했다.

4개월쯤 치료하니 마치 성형수술이라도 한 것처럼 예전의 얼굴을 되찾았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곧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들고 왔다. ‘기본’을 실천했다면 마음고생도 덜하고, 고운 얼굴의 미소를 좀 더 빨리 되찾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