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항상 새로운 탈을 쓰고 나타난다. 별것도 아닌 일 때문에 두려워 떨고,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놓고도 줄창 눈물을 흘린다.” <파우스트>의 이 대사처럼 인간의 불안은 실제보다 내면에서 더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
불면증으로 내원한 40대 주부. 20·30대에 간헐적으로 시작된 불면증이 최근 1년 사이 심해져 하루도 수면제 없이는 잠들기 어렵다. 수면제를 복용해도 간신히 선잠을 자는 정도라 몸은 늘 천근만근이다.
불면증이 오래되다보니 성격도 강박적으로 변해간다. “오늘도 잠을 못자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자기 전 화장실을 여러 차례 다녀온다. 소변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잠들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에 쥐어짜듯 소변을 본다. 또한 이불과 베개를 가지런히 하지 않으면 자다가 깰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반듯한 자세로 옷매무새까지 신경쓴 뒤에야 간신히 잠을 청한다.
그러나 생각이 많은 날은 잠들기 어렵다. 최근에는 이사 문제로 지금 집을 사면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 걱정이다. 또 아들 학원을 알아보고 두 군데로 압축했는데 어디가 더 좋을지 고민이다. 이처럼 큰 우환이 있어서라기보다, 무언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불면증은 더욱 심해진다.
환자의 증상은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소음인 ‘불안정지심(不安定之心)’의 전형적인 예다. 소음인은 ‘사고·감정·감각·직관’이라는 4가지 정신기능 중에서 ‘사고’를 타고난 체질이다.
즉 무언가 한가지에 몰입하게 되면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 명쾌한 결론이 나면 당장 실행에 옮겨 확인하고 싶은 조급증이 있다. 반면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결론을 내렸다가도 다른 변수를 고려해 또 바꾼다. 생각이 반복되면서 불안은 더 증폭된다.
소음인의 불면은 이런 생각의 과(過)함이 원인이다. 불면으로 몸이 피곤해지고, 몸이 피곤할수록 생각은 더 많아져 다시 불면이 심해지는 악순환이다.
한가지 선택이 이끌어낼 최상과 최악의 결과가 어디까지인지 추론하는 것은 필요하다. 최상의 결과라면 감사하고, 최악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견디고 감당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된다. 감당할 수 없는 결과가 예상된다면 과감히 선택을 포기하면 된다. 그러나 작은 손실도 감당하지 않으려다간 불안정지심이라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부동산 관련 정보를 아무리 취합하고 고민한다 해도, 후일 집값이 어떻게 될지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집값이 떨어지는 최악의 결과가 와도 최상의 결과에 대한 기회비용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환자의 불안정지심을 안정시키고 유아기 심리적 상처를 해소하는 면담치료를 병행했다. 아울러 체력이 떨어지면 생각과 불안이 더 가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약을 처방했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혈자리에 뜸을 뜨면서 2~3주 간격으로 수면제 사용량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갔다. 4개월 뒤 환자는 수면제를 완전히 끊고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더 많이 오래도록 고민하면 최악의 결과를 막을 수 있다는 태도가 때때로 스스로를 옥죄기도 한다. 그 대가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놓고도 줄곧 불안에 떠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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