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재상으로까지 불렸던 독일의 비스마르크. 그 역시 왕 앞에서는 감정 표출을 자제해야 했다. 집에 돌아와 아끼던 값비싼 화병을 바닥에 던져 박살냄으로써 겨우 분노를 진정시키곤 했다.
틱장애로 내원한 초등 4학년생. 유치원생 때 시작되어 조금 덜해졌다가 최근 갑자기 심해졌다. 눈뿐만 아니라 코와 입까지 찡긋거린다. 아이의 손톱 주변에는 여기저기 물어뜯은 흔적이 있고, 멀쩡하다가도 감정에 따라 토하는 일도 잦다고 했다. 아이는 안정제 복용과 미술, 놀이치료도 받았지만 점점 심해졌다.
학원 수강 과목이 10개나 되었다. 물론 학습량이 많다고 무조건 틱장애가 오는 것은 아니다. 과중한 학습량도 촉발원인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부모와 아이 간 ‘일방소통’의 문제가 더 크다. 아이의 수준과 감정에 대한 배려없이 ‘남들도 하고 있고 모두 아이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부모의 자기방어가 관찰된다. 심지어 먹고 쉬고 노는 사소한 선택에서도 아이의 의견은 묵살된다.
부모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강요한 적 없고, 아이가 스스로 원하고, 요즘 그 정도는 과한 것도 아니라는 식이다. 그렇다. 대통령은 “기름값이 수상하다”고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러나 장관들은 눈치껏 헤아리고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아이에게 부모는 절대권력이나 마찬가지다. 군주는 쌍방향 소통이라 말하지만, 에두른 강압이 되기 십상이다.
부모의 요구를 건성으로 넘기고 거부의사를 겉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에게 틱장애는 드물다. 차마 거절 못하는 여린 심성의 아이들은 내적 불만과 긴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이는 태음기가 강한 소음인이다. 논리적으로 수긍되지 않으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사고가 진행되지 못한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게임은 왜 하면 안 되는지부터 마음에서 충분히 수긍돼야 한다. 그런데 이를 외부에서 강요하면 분노만 형성된다. 그럼에도 그 분노를 직접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억누른다.
그나마 욕구불만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체육활동과 인터넷 게임이었다. 이마저 학원수업을 이유로 못하게 됐다. 이 문제 역시 부모는 그냥 지시했을 뿐, 아이와 대화하는 기술이 부족했다.
틱장애는 내적 분노를 신체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제발, 이 숨막히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온몸으로 애타게 호소하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신경이나 신체 질환쯤으로 여겨 약물을 쓰고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완치된 것으로 여기면 오산이다. 부모와 자식 간 소통부재라는 근본적 문제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잠복된다. 잠복된 분노는 사춘기가 되면 더 증폭된 갈등으로 드러난다.
다행히 울체된 경락의 기운을 소통시키는 침뜸과 약물치료로 아이의 틱증상은 상당히 호전됐다. 그러나 일방소통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결코 완치된 것이 아님을 부모에게 강조했다.
아이는 성장하고 부모는 늙어간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이는 언제고 부모가 휘두르던 권력을 자식이 빼앗을 때가 다가옴을 의미한다. 일방소통 때문에 그간 억압된 분노가 제일 먼저 누구를 향할지는 자명하다. 아버지를 거세하고 싶었던 오이디푸스의 소원이 내 아이와는 상관없는 신화 속 이야기라고 방심해선 안된다.
'醫學 > 한방춘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본 무시의 ‘혹독한 대가’ (0) | 2013.04.09 |
---|---|
‘부부 불화의 씨앗’ 호승지심 (0) | 2013.04.08 |
아침은 무조건 먹어라? (0) | 2013.04.04 |
‘갈등의 씨앗’ 극단적 호불호 (0) | 2013.04.03 |
주변인을 힘들게하는 ‘긍심’ (0) | 2013.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