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그러나 ‘물’이 아닌 ‘마음’까지 베인 상처는 몸까지 병들게 한다.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라도 정작 상대의 호불호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싸움은 평생 반복된다.
메니에르 증후군으로 내원한 30대 여성. 두통과 심한 어지러움, 메스꺼움, 귀울림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병이다. 신체적 원인을 찾기 어렵고 대부분 스트레스가 관여된다.
이 환자 역시 한 달 전 부부싸움을 크게 한 것이 계기였다. 함께 출근하던 승용차 안에서 정치논쟁이 붙었다. 환자는 보수성향의 A신문 기자인데, 남편은 진보성향의 연구원이다. 차 안에서 A신문의 논조를 놓고 언쟁이 격해지다가 급기야 남편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만 내리라고 소리쳤다. 막상 내리고 보니 택시도 지나지 않는 도로라 찬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혼자 걸어왔다. 이후로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두통과 어지럼증이 시작됐다.
환자는 “길에 버리고 간 생각을 하면 이 남자를 믿고 계속 살아야하나 싶다”라며 크게 상심했다. 물론 남편이 지나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남편 원망만으론 달라질 게 없고, 남편 성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화해가 가능하고 반복된 갈등도 예방할 수 있다.
환자는 태음인, 남편은 소음인이었다. 사상의학에서 태음인은 인의예지(仁義禮智) 중 ‘예’를, 소음인은 ‘지’의 속성을 타고난다. 지(智)란, 명쾌한 결론이 날 때까지 추론하여 최종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하나의 결론에 힘들게 도달하면, 그것만이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것이 된다. 그래서 소음인의 논리나 신념은 그만큼 바꾸기가 어렵다.
반면 예(禮)란, 정황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여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굳이 옳고 그름의 분명한 결론이 나지 않아도 된다. 상반된 주장이라도 어정쩡한 채로 수용한다. 정반대 견해의 피력도 예의만 갖춘다면 상대에게 상처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음인에게 나와 다른 견해의 강요는 결국 ‘내 생각이 틀렸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인신공격으로까지 여겨진다. 누구보다 자기편인 아내가 자신의 신념을 뒤흔드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소음인은 오늘 만났어도 뜻이 같으면 금방 동지이자 친구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오랫동안 만났어도 뜻이 다르면 단칼에 갈라선다. 차마 갈라설 수는 없으니 차에서 내리라고 소리친 것이다. 예의는 그 다음의 문제다. 소음인의 머리에는 논리가 감정이나 예의보다 우선한다. 반면, 태음인인 환자는 “쓰레기 같은 신문”이라는 말, 차에서 내리게 만드는 행동 같은 ‘무례함’에 더 화난 것이다.
관건은 한가지 사안을 놓고도 의미를 두는 초점이 체질마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점이다. 이 점을 납득시키고 나니 환자 집안에도 화해의 기운이 돌기 시작했고 3주 만에 메니에르 증상도 치료됐다.
세상에 옳고 그름이 명확한 일이 얼마나 될까. 다만, 타고난 체질이 달라 호불호가 다를 뿐이다. 실상은 나의 ‘좋고/싫음’에 채색이 가해진 것뿐이다. 내가 좋은 것을 ‘옳다’고, 내가 싫은 것을 ‘틀렸다’고 소리 높인다. 여기에 ‘당연히 남들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확신이 대인갈등의 씨앗이자 만병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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