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송나라의 한 농부가 곡식의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다며 일일이 싹을 위로 잡아당겨 놓았다. “오늘 싹이 빨리 자라도록 일을 많이 해 피곤하다”는 자화자찬에, 그 아들이 밭에 달려가보니 싹은 이미 말라 있었다.
<맹자>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어리석다’고 말하긴 쉽지만, 정작 나 자신의 문제로 다가올 땐 결코 쉽지 않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금과옥조이지만, 허물을 남긴 이후에야 떠오르는 말이기 쉽다.
소변을 지리는 것 때문에 내원한 네 살 여아. 대소변을 잘 가렸는데 3개월 전부터 수시로 옷에 지리는 바람에 애를 먹는다. 옥수수 수염이며 홍삼 등 방광에 좋다는 약도 효과가 없었다. 소아과 약도 잠시 덜하게 해줄 뿐이었다.
아이는 발육상태도 좋고 식욕이나 소화상태도 좋았다. 그렇다면 정신적 원인부터 살펴야 한다. 그런데 진료 내내 엄마의 관심은 약에만 가 있었다. 이는 엄마의 무의식적 회피다. 3개월 전 환경변화가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묻자, 그제서야 유치원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가 너무 똑똑한데 어린이집에선 배우는 것 없이 그냥 놀다오는 것 같아, 엄마는 특별히 부탁해 유치원으로 옮겼다. 문제는 또래보다 한 살 어리다보니 왕따처럼 놀림을 당하게 되었다. 직장맘인 엄마와 아이는 아침마다 유치원 버스를 앞에 두고 한바탕 씨름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휴일에는 온종일 어리광이 심해졌다.
급격한 환경변화나 불안은 유아에게 밤에 놀라 우는 야경증이나 배뇨장애로 이어진다. 또 심한 어리광은 보상심리로 일종의 퇴행현상이다. 지금이라도 나이에 맞게 네 살 반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 그러나 엄마는 “요즘은 성장도 빠르고 취학전에 영어와 수학은 어느 정도 해놓아야 한다”며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밤송이에 칼집만 미리 내놓는다고 빨리 익어 벌어질까. 이런 면에서 ‘자식농사’라는 표현은 여러모로 명언이다. 농사를 짓듯 때에 맞춰주면 좋은 과실이 열리지만, 농부가 마음만 서두르면 쭉정이가 되기 쉽다. 유치원에서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도 지지해줄 엄마가 옆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데도 보약만 주면 곧 적응하리란 엄마의 기대는 네 살배기에겐 너무 가혹한 처사다.
불안과 긴장이 심해지면 방광의 기운은 차가워진다. 여기에 이뇨제인 옥수수 수염은 증상을 악화시키기 십상이고, 홍삼은 체질에도 맞지 않다. 방광에 직접 작용하는 약 대신, 심(心)과 담(膽)을 안정시키는 한약을 처방했다. 방광의 문제가 아니라, 놀라고 긴장된 기운을 풀어주는 것이 사상의학적 해법이다.
다행히 어린이집으로 컴백했고, 아이의 소변 문제도 호전되었다. 그러나 엄마가 많이 안아주고 적절한 때에 칭찬도 많이 해줘야 재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영어·수학보다 또래들과 어울리며 소통하게 하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한 학습임을 강조했다.
<맹자>는 ‘아무리 좋은 지혜가 있어도 세(勢)를 타는 것만 못하며, 비록 좋은 농기구가 있어도 때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라고 전한다. 싹이 잘 자라도록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다. 그런데 성급히 싹을 뽑아올리는 송나라 농부의 우를 범하기 쉬운 것이 요즘 조기교육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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