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정신의학에서도 늘 강조된다. 흔히 나 자신이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라는 게 정설이다. 하물며 자식인들 다르겠는가. 부모가 바라는 것만 자식에게 투사하다 보니 객관적 시선을 잃기 쉽다.
몇달째 두통으로 고생 중인 여중생. 진통제 복용은 물론 뇌 MRI 검사까지 두 차례 받았으나 이상을 못 찾았다. 결국 총명탕이라도 먹여보겠다는 엄마 손에 이끌려 내원했다.
학생의 두통은 친구들이 반장인 자신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데, 선생님은 통솔 책임을 물어 반장을 혼내는 일이 잦으면서 시작되었다. 이 두통은 시험기간 2주 전쯤부터 점점 심해졌다. 어깨와 뒷목이 뻣뻣해지고 체한 듯 울렁거리다 두통이 오는 전형적인 태음인 긴장성 두통이다.
성정분석 결과 태음인 중에서도 타인의 감정을 빠르게 파악하고 순간 전체 분위기를 조율하는 능력인 소양기가 떨어지는 심리유형이다. 이런 유형은 남들 앞에서 발표한다고 하면 미리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다.
아이는 성적에 대한 부담까지 가중된 상태였다. 시험 전 시작된 심한 두통은 시험성적이 저조할 경우 최소한의 면죄부가 되는 셈이다. 물론 꾀병은 아니다. 당사자인 아이나 엄마는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이런 부담스러운 상황으로부터 무의식적인 도피가 두통의 원인이다.
태음인에게 긴장을 이겨내는 것은 꼭 필요한 학습이다. 문제는 속도와 양이다. 한 계단씩 올라가면 보약이지만, 두세 계단을 한꺼번에 오르도록 강요받으면 공황상태가 된다. 총명탕 대신 긴장성 두통 해소에 도움이 되는 한약을 처방하면서 “내년엔 반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그러나 엄마는 “요즘은 리더십도 상급학교 진학할 때 평가요소이고, 무엇보다 아이가 스스로 하려는 것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과연 그럴까. 2차 면담에서 “지난주는 두통이 어땠니”라는 질문에, 한참 고민하던 아이의 답변은 “잘 모르겠는데요”였다. 단순한 물음에도 쉽게 답을 못하는 성정을 지닌 아이를 두고 엄마는 외향성이 요구되는 반장을 아이 스스로 원한다고 말한다.
외향성이 강해 학부모 임원까지 하는 엄마와 달리, 내향성이 강한 아이에게 반장은 큰 부담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함으로써 칭찬받으려 애쓴다. 정신적 이유(離乳)를 마치지 못한 아이들에게 부모는 하늘이자 땅이다. 부모를 화나게 하면 어떤 대가를 치를지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은 ‘No’여도 ‘Yes’라고 말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아이 스스로도 ‘Yes’라고 착각한다.
엄마는 “너 진짜 반장하기 싫어?”라는 말로 아이의 답을 강요한다. 그러나 아이의 진짜 속마음은 두통이라는 신체화된 언어로 표현된다. 부모는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현명한 부모라면 말 대신 아이의 눈빛과 표정으로 교감할 수 있다.
부모들은 “아이가 원해서일 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런 확신이 강할수록 거칠고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내 마음도 내 것이 아닌데, 내 재산이다 내 자식이다 괴로워하지 말라’는 잠언대로,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세상에서 자기확신이 강해질수록 등잔 밑은 점점 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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