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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한방춘추

식탐 유발하는 ‘마음의 허기’


식탐은 마음의 허기가 원인이다. 일부에선 살찐 사람을 단순히 절제력이 없다며 힐난한다. 그러나 세상살이의 고달픔, 억울함, 분노를 외부로 발산하지 못한 채 먹는 것으로 푸는 유형도 많다.

“한 달 새 7㎏이나 늘었다”며 비만치료차 내원한 30대 전업주부. 자고 나면 얼굴과 손발이 붓고 어깨통증과 두통이 생겼다. 식사량이 늘었지만 먹고 돌아서면 금방 허전해 주전부리를 달고 산다. “요즘 왜 이리 뚱뚱해졌느냐”는 남편 말에 상처받고 내원했다.

갑작스러운 폭식은 심리적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최근 환경변화를 면담하니, 친정아버지가 암수술 후라 인근 친정집에 매일 들러 병시중을 해오던 중이었다. 연로한 어머니는 간병이 힘에 부치고, 아버지 또한 딸을 더 편하게 여기는 터라 중환자 시중을 거의 혼자 하고 있었다. 근처에 사는 언니는 일주일에 한 번, 마치 손님처럼 대충 둘러보며 도움은커녕 잔소리만 늘어놓다 가니 울화만 더 치민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은 엉망이고, 남편과 아들은 짜증만 낸다. 몸은 녹초가 되는데도 이상하게 식욕은 더 당겼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자신을 억제하며 집안일과 간병까지 하지만, 들리는 건 온통 자신을 향한 불만뿐이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그 어디에 있어도 마음이 불편하다.

사상의학에서 태음인은 ‘인륜(人倫)’을 타고난 체질이다. 인륜이란, 시비나 이해관계를 따지기 전에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근본 도리를 말한다. 물론 긍정적 성정이지만 과하면 병의 원인이 된다. 책임이나 뒷감당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하고 본다.

환자 역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어디까지 할 것인지는 전혀 고려치 않았다. ‘효도’나 ‘자식된 도리’만 생각하고, 1인 3~4역을 하자니 몸도 마음도 고달파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소리마저 듣게 될 지경이다.

이런 환자에게 비만을 치료한다고 식욕억제제를 준다거나, “운동 열심히 하라” “고기보다 야채 위주로 먹어라” 하며 굶기기식 처방을 하면 이중고를 안겨줄 뿐이다. 기초대사량을 높여주는 한약을 투여하되, 환자가 처한 환경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우선 환자를 짓누르고 있는 ‘효도’라는 양심의 무게부터 덜어주었다. 효(孝)란 부모의 요구를 무엇이든 다 들어주란 뜻이 아니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처럼, 판단력이 흐려진 노부모의 요구는 때로는 아이 보살피듯 적절한 거절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간병은 도우미를 써서 힘든 일은 분산시키고, 비용은 언니에게 반반 부담을 요구하라고 권유했다. 아울러, 잔소리만 많은 언니가 오는 날은 요령껏 급한 일을 핑계삼아 자리를 비우라 했다. 인간은 유한(有限)한 몸을 지녔음에도 머리로는 늘 무한(無限)을 꿈꾸는 존재다. 간병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머릿속 착각은, 열 마디 말보다 막상 몸으로 부딪쳐봐야 깨닫기 때문이다.

한 달 뒤 환자는 살도 많이 빠졌고, 처음보다 밝은 표정으로 내원했다. 간병은 일주일에 3일만 하기로 했고 예전처럼 가정을 돌보게 됐다고 했다. 누군가 식탐으로 허겁지겁 먹는다면 “살찐다, 먹지 마라” 하는 핀잔으로 상처주기보다, 마음속 허기를 보듬어줄 진심 어린 대화가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