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과 함께 캥거루족도 늘고 있다. 부모에 의존하며 현재에 안주하는 젊은 세대, 혼자 힘으로는 눈조차 뜨지 못하고 어미의 배주머니 속에서 1년씩 젖을 빨다 뒤늦게 독립하는 캥거루를 빗댄 용어다.
진통제도 듣지 않을 정도의 심한 생리통으로 수년째 고생하다 내원한 20대 중반 여성. 허리와 골반 전체가 끊어질 듯 아파 한 달에 이틀은 꼼짝 못하고 집에만 누워 있다고 호소했다. 몇차례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으나 큰 이상이 없었고, 치료를 받아도 잠시 호전되다가 재발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대학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는 증상이 더 심해졌다. 그동안 어학연수며 편입과 휴학을 반복했는데, 생리통과 공무원시험 준비를 이유로 다시 휴학 중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정보는 보호자로 동행한 언니의 입을 통해 나왔다. 환자는 간단한 질문에도 마치 엄마 눈치보는 아이처럼 매번 우물쭈물했다.
성정분석 결과 이른바 캥거루족이 겪는 극도의 불안감이 생리통의 주요 원인이었다. 취업과 경제적 독립을 종용받는 데 대한 두려움으로 자궁평활근이 과도하게 긴장된 것이다. 공무원시험을 휴학 이유로 들었지만 실상은 언니의 권유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스스로 결정하며 나아갈 용기는 적고, 뒤로 물러서자니 주변상황에 등떠밀리는 형국이다. 무서운 번지점프대에서 나홀로 세상에 뛰어내려야 하는 두려움 같은 것이다.
사상의학에서는 이를 태음인의 ‘거처(居處)’로 설명한다.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항상 ‘익숙한 것’에만 머무르려 하고, 낯설고 어려운 대상은 피하려 하는 심리상태다.
언뜻 무언가에 빠져 즐기는 듯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두려움과 회피의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특히 체험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와 비슷한 상황만 마주해도 긴장하고 겁부터 낸다. 새롭고 낯선 세상은 모두 겁나는 대상으로 동일시되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이어진다. 공포감은 부지불식간에 심신을 긴장시켜 두통이나 위경련, 생리통 등 다양한 정신신체질환으로 나타난다. 이 환자의 생리통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종 검진만으론 원인을 알 수 없고 약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꾀병도 아니다. 몸의 증상과 함께 환경적·심리적 측면의 원인을 해소해주는 게 관건이다. 신체적으로는 자궁평활근을 이완시키는 태음인 한약을 사용하면서, 면담 치료 또한 병행했다. 심리적으로 지지해주며 작은 결정이라도 스스로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서서히 수위를 높여가되 보호자에게 환자를 채근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언제나 언니 손에 이끌려오다시피 하던 환자는 얼마 뒤 “언니가 바쁘다”며 혼자 내원했다. 공무원시험은 본인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으며, 우선 대학졸업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점차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수년간 끌어오던 생리통 또한 점차 약을 쓰지 않고도 견딜 정도로 호전되었다.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기에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그러나 언제고 마주해야 할 세상이라면, 나이에 맞게 적당히 겪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현명한 부모역할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성공하는 법보다 실패하는 법, 실패할지언정 좌절하지 않는 학습이야말로 정작 조기교육이 필요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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